검찰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자본시장법 위반 범죄사실을 구성한 것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이다. 합병에 동반된 제일모직의 가치 부풀리기, 회계 부정 등이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 강화를 위한 행위였다는 게 검찰의 일관된 판단이었다.
검찰은 이 합병을 둘러싸고 이미 사법처리를 받은 이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 실재했고 이를 위해 대통령을 상대로 한 청탁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법원의 판단으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대통령이 파면됐고, 국민연금공단이 두 회사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삼성 임직원들도 구속됐다.
150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구속영장 청구서 속에는 검찰이 이 부회장의 신병 확보를 위해 고심한 흔적도 엿보였다. 이 부회장에게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아닌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등 회사가 손해를 입은 과정을 입증하기보다는 합병 자체가 자본시장 질서를 해친 사기적 부정거래였다고 설명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검찰이 이론의 여지가 적은 범죄 혐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삼성물산의 가치를 고의로 떨어뜨리고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인 행위를 주가조작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배임 사실은 자연스럽게 입증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배임과 사기적 부정거래 사이에 실질적으로 형량의 차이도 없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 검찰은 이 부회장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기업들의 합병 자체가 사기적 부정거래로 판단된 판례들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위축되면서 검찰이 과연 국내 최대 대기업 총수의 구속을 시도할 수 있겠느냐는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 부회장을 두 차례 조사한 뒤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보고, 지난 3일 재가를 얻었다. 수사팀은 이 부회장의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수백 페이지 분량의 의견서에 담아 구속영장 청구서와 함께 법원에 제출했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신청한 상황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마련된 수사심의위 존립 근거를 도외시한 성급한 처사라는 비판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검찰 수사심의위는 현 정부 들어 검찰이 개혁 의지를 갖고 도입한 제도였다”며 “재벌도 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수사심의위 결과를 기다리지 않은 구속영장 청구는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의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8일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열린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월 국정농단 사건 수사 때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후 다시 구속 갈림길에 서게 됐다. 당시 법원은 한 차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지만, 특검은 한 달여의 보강 수사를 거쳐 같은 해 2월 이 부회장을 결국 구속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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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원 이경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