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되는 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전쟁 당시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되는 전투가 경북 칠곡에서 있었다. 왕건과 견훤의 혈투에서부터 임진왜란·병자호란 때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호국의 고장'으로 불린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두 달 만인 1950년 8월 칠곡은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다. 북의 기습 남침에 국군은 한 달 만에 낙동강 아래로 후퇴했다. 남은 곳은 대구와 부산. 두 곳을 잃으면 대한민국도 끝이었다. 당시 한미연합군을 지휘하던 월턴 워커 미8군 사령관은 두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낙동강 방어선'(워커 라인)을 구축했다. 낙동강과 그 상류의 산악 지대를 잇는 최후의 방어선이다. 칠곡은 '낙동강 방어선'의 핵심이었다.
배수진을 친 곳인 만큼 전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칠곡을 관통하는 낙동강은 55일간 피로 물들었다. 칠곡 동북쪽의 다부동은 가장 처절했다. 대구에서 불과 22㎞ 떨어진 전략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전승사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다부동 전투'는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24일까지 이어졌다. 국군 제1사단이 북한군 3개 사단과 맞서는 동안 북한군 2만4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 또한 승리는 얻었지만 학도병을 포함해 1만여명이 스러졌다.
중앙고속도로 다부나들목 인근 자그마한 언덕 위에 6·25전쟁 당시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다부동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전적지가 조성돼 있다. 탱크를 형상화한 기념관이 인상적이다. 그 주변으로 여러 개의 비석과 함께 장갑차, 대포 등이 전시돼 있다. 다부동 서북쪽은 유학산(해발 839m)이다. 이곳도 격전지 중 한 곳이다.
다부동 동쪽엔 가산(해발 901.6m)이 있다. 팔공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10㎞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곳에 '호국의 고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 가산산성(사적 제216호)이 있다.
바깥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경사가 급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박 모양의 좁다란 분지가 나온다. 이러한 산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1640년(인조 18년)부터 99년에 걸쳐 축성했다. 내성·외성·중성으로 된 '삼중의 성'이고, 동·서·남·북 4대문과 중성문이 있다. 암문·수문·곡성·치성·포루 등 100여 개의 시설물과 관아·군영·마을 유적 등이 성내에 남아 있다.
산성의 현재 주 출입문은 남문인 '진남문'으로 산성의 4대문 가운데 가장 잘 복원돼 있다. 아치형의 홍예문으로 185m의 양쪽 성벽과 함께 웅장하고 멋진 모습을 자랑한다. 이곳을 지나면 성내로 들어가 가벼운 등산을 할 수 있다. 1시간 쯤 오르면 동문에 도착한다. 홍예문 위에 문루는 없고 평평한 모습이다.
가산 정상 인근에는 가산바위가 넓고 평탄하게 펼쳐져 있다. '가암'이라고도 불리는 바위는 약 270㎡다.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보면 아직 복원되지 않은 성곽 너머 멀리 다부동 전적지와 그 오른쪽으로 유학산이 눈에 들어온다.
왜관읍 낙동강을 건너는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등록문화재 제406호)는 1905년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세웠다. 1941년 상류에 복선 철교가 완공된 뒤부터 사람과 차가 함께 이용하는 인도교가 돼 방문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쟁은 옛 왜관철교에 큰 상흔을 남겼다. 낙동강까지 밀린 한미연합군은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8월 3일 교량을 폭파했다. 왜관 쪽 둘째 경간 트러스와 상판이 무너져 내리면서 길이 469m 중 63m가 끊어졌다. 같은 해 10월 침목 등으로 긴급 복구된 뒤 다시 인도교로 활용됐다. 전쟁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이 다리는 1991년부터 93년 2월까지 교각 1기 신설과 상판 복구를 마치고 현재 보행·자전거 전용도로로 이용된다. 호국의 다리 인근 옛 왜관터널 위에 '애국동산'이 조성돼 있다. 맨 위에 '유엔 왜관지구전승비'가 세워져 있다.
낙동강방어전투를 재조명하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호국의 다리에서 약 2.5㎞ 상류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모습이다. 중앙홀에 구멍 난 철모와 55개의 탄피 모형으로 꾸민 장식물이 눈길을 끈다. 4층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과 맞은편 관호산성, 들판을 지나 금오산으로 뻗은 경부고속철도 선로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 여행메모
영남 3대 양반촌 매원마을 고택체험
‘호국평화기념관’ 임시 무료 관람
경북 칠곡 지역의 전적지는 곳곳에 흩어져 있다. 다부동전적지와 유학산, 가산산성은 중앙고속도로 다부나들목에서 가깝다. 낙동강변에 있는 칠곡호국평화기념관과 옛 왜관철교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게 좋다. 각각 남구미나들목과 왜관나들목에서 빠지면 된다.
조선시대 영남의 3대 양반촌 중 하나였다는 칠곡 매원마을에는 고택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 숙소가 여럿 있다. 도개온천 쪽에 칠곡도개온천모텔 등 숙박업소가 몇 곳 있다.
팔공산 아래 칠곡의 맛집이 몰려 있다. 왜관에는 미군 부대 주변에 미군을 상대로 한 햄버거 집들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현재 일부만 개장하고 있다. 대신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칠곡=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