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이를 둘러싼 경영권 승계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의 수사에 대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검찰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했다. 재계 안팎에선 검찰 외부의 ‘객관적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이 부회장 측이 나선 것을 두고 일종의 최후의 카드를 꺼낸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중앙지검은 3일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 수사심의위를 소집해 달라는 신청서를 전날 제출했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은 조만간 검찰시민위원회(이하 시민위)를 열어 이 부회장 등의 사건을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에 넘기는 안건을 논의할 계획이다. 검찰청 시민위가 소집을 결정하면 검찰총장은 이를 받아들여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를 소집해야 한다. 검찰수사심의위가 현안위원회 등을 꾸려 심의한 결과는 검찰이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이 부회장 측의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으로 1년6개월을 끌어온 ‘삼성 합병·승계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신병처리 방향과 기소 여부는 검찰 외부의 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비공개로 소환 조사한 뒤 사법처리 수위에 대해 내부 검토 중이다.
이 부회장 측이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이라는 제도를 꺼내든 것은 이른바 ‘무리한 기소’로 이어질 가능성을 막아보겠다는 취지다. 검찰은 이 부회장 측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통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여 합병을 한 뒤 삼성물산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확대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부회장 측은 신청서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합법적으로 이뤄졌고 제일모직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는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정당한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부회장은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구속 기소될 경우 기업 경영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고 보고 강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삼성그룹은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놓여 있다. 사실상 그룹 총수라고 할 수 있는 이 부회장이 사법처리로 자리를 비울 경우 경영 공백이 생기고 그 피해가 어느 때보다 클 수 있다는 불안이다.
일각에선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 심의가 이 부회장 등의 사법처리 수위 결정에 더 유리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작용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6일 경영권 승계와 노동조합 문제 관련 대국민 사과 후 연속적으로 투자 계획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현장에 나가고 있다. 또 코로나19 확산 국면에서 삼성이 마스크 공급 등 방역과 관련한 정부 정책에 적극 협력하면서 큰 지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을 1만5000명 채용하겠다고 밝힌 뒤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심의위는 수사와 관련된 사안에 관해서만 판단하는 게 원칙이지만 수사 외적 요인의 작용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삼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심의위가 일부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