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24·끝) 주님께 ‘징집’된 세월… 뒤돌아보니 발자국마다 은총

입력 2020-06-05 00:01
김연수 사모(왼쪽 두 번째)가 지난해 12월 20일 서울 동대문구 다일천사병원에서 열린 다일복지재단 상임대표 퇴임식에서 가족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나는 다일복지재단 상임대표직을 사임했다. 남편의 부탁에 내 일을 내려놓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21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부족한 나를 위해 멋진 퇴임식을 준비해 준 재단 식구들과 순서를 맡아주신 교계 어르신들, 바쁜 시간을 내 참석해준 자녀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에게 무척 고마웠다.

퇴임 소회와 감사 인사를 나누기 위해 단상에 섰을 때, 그간 겪은 많은 일이 고속 재생 필름처럼 지나갔다. 회상의 장면들 사이 내 가슴을 치는 단어가 있었다. ‘징집’이었다. 징집은 국가나 그보다 힘이 센 절대자가 큰 권력으로 누군가를 불러들이고 의무를 부과하는 일이다.

하루에 버스가 두 번밖에 오가지 않는 외진 산골에 살면서 내 꿈은 그저 시골 문화원 원장으로 사는 거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선 나를 수녀로, 또 개신교 목회자의 아내로 부르셨다. 학교 교사로 살던 나를 크리스챤아카데미 영성수련 담당 간사로 세우셨고, 다시 다일복지재단으로 이끄셨다. 이 모든 건 내 생각이나 계획 밖의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한마디로 내 인생은 하나님께 덜미 잡혀 끌려 온 과정의 연속이었다.

60세도 지난 늦은 나이에 서강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였다. 예언서를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내게 예레미야 선지자에 대한 발제를 맡겼다. 시골 마을 아나돗에서 하나님께 징집돼 파란만장한 선지자로 살아간 예레미야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물론 내가 예레미야처럼 고난과 고통으로 점칠 된 삶을 살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징집된 삶을 살았다는 점에서 예레미야의 현실적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등 떠밀리듯 걷게 된 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많은 열매를 주셨다. 남편이 밥퍼를 시작할 때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역들이 불과 30여년 사이에 벌어졌고, 은혜롭게 이어지고 있다. 세계 10개국 18개 분원에서 하루 4000명 넘는 아이들이 다일에 와서 밥을 먹고 건강하게 자라 공부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초창기부터 공동체, 교회, 재단에서 우리와 함께해온 분들,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모든 분과 시시때때로 일손을 보탰던 자원봉사자들께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람의 생명을 표현할 때 흔히 ‘몇 년’을 살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이 곧 생명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일이나 시간을 들여 번 돈을 후원해 주는 일 모두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명 일부를 주는 일이다.

우리와 함께하다가 지금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그분들도 오늘의 다일공동체를 있게 하는 데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셨던 분들이다. 역경의 열매를 쓰는 동안 고마운 분들이 많았는데 일일이 지면상 성함을 밝히지 못해 안타까웠던 마음을 전한다.

누가 말했던가. 지난 세월 뒤돌아보니 걸어온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은총이었노라고. 앞으로 걸어갈 발자국 역시 그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소망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의 꿈을 따라 달려온 다일공동체가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예시이며 실현이기를 감히 기도한다. 이제까지 읽어 주신 독자들과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올려드린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