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을 외우고 인용하지만, 읽진 않습니다.”
선교신학자 레슬리 뉴비긴(1909~1998)은 1985년 스위스에서 열린 한 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강영안 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 교수가 ‘당신은 복음주의자냐’고 묻자 아니라며 내놓은 답이다.
‘복음주의자만큼 성경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강 교수는 뉴비긴의 답을 의아하게 여겼지만, 이내 그 의도를 알아챘다. 복음주의자 가운데 자의적으로 성경을 남용하고, 기복적으로 성경을 오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였다. 강 교수의 ‘읽기 탐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읽는다’는 건 무엇이며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저자는 동·서양의 독서법 전통을 탐색하며 바르게 성경을 읽는 방법을 도출해낸다.
현재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에서 칸트를 연구한 철학박사다. 책은 성경 읽기와 묵상에 관한 것이지만 현상학과 해석학 등 철학 용어가 여럿 등장한다. 플라톤과 에드문트 후설, 장자의 이론을 들어 문자의 속성을 설명하고 참된 읽기의 방법을 안내한다. 핵심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읽는 걸 넘어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며 자기 삶에 적용하고자 노력한다면 제대로,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읽기는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을 빚어내는” 결과를 가져온다. 주자학을 집대성한 송나라 주희와 카르투시오회 수사 기고 2세,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독서법도 같은 결론을 내린다.
주희의 독서법은 글을 읽고 마음을 수련하며 앎을 실천하는 것을 하나로 본다. 책 읽기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하늘의 뜻대로 마음을 지킬 수 없는 까닭이다. 기고 2세의 독서법은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다. 렉시오 디비나와 루터의 독서법은 순서는 다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한 뒤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건 같다. 세 전통 모두 머리로 문자를 곱씹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과 몸을 움직여 삶의 현장에 영향을 끼치는 독서가 참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관심은 성경을 읽는 법에서 적용법으로 점차 옮겨간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기독교의 ‘경전’이자 당대 언어와 사회상이 반영된 ‘책’이다. 두 특성을 가진 성경을 주관적으로 적용하지 않으려면, 혹은 성경학자처럼 글 자체의 의미에만 집착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봐야 할까.
저자의 해법은 문자와 삶의 현실을 하나로 통합하는 ‘인격적 읽기’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를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인종말살 정책에 대항했던 본회퍼는 강연차 미국 뉴욕을 방문했다가 ‘너는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 4:9)란 성경 구절을 읽고 독일로 돌아갔다. 결국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한다.
단지 한 구절을 보고 행동을 옮긴 본회퍼는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게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본회퍼는 독일과 독일교회가 처한 현실과 자신의 소명과 책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고 그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내어놓았다.… 이처럼 인격적으로 읽을 때,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은 서로 만나게 된다.”
읽기와 실천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매일 쉬지 않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성경뿐 아니라 철학, 신학 등 인문 고전도 꾸준히 읽을 필요가 있다. 책은 “삶의 울타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창”이라서다. 저자는 현대철학과 기독교 사상을 이끈 주요 인물의 책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성경 문맹’(Bible illiteracy)에 빠진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뼈아픈 지적을 남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으면, 세상이 우리를 읽을 것이다. 성경을 읽는 사람만이 세상을 제대로 읽고, 자신은 물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