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았나

입력 2020-06-04 21:03

지난 2월, 대구에 역병이 들이닥치자 병원들부터 난리가 났다. 대구시는 10여년 전부터 “의료특별시, 메디시티 대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었지만 급속도로 퍼지는 바이러스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시에는 2만5000개 병상이 있었는데 감염병 환자가 입원할 곳은 많지 않았다. 입원실을 구하지 못해 집에서 투병하다가 숨지는 환자가 나오기도 했다. 당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간염병동 간호사들이었다. 이들은 환자 배식이나 병실 청소까지 도맡아야 했다. 간호사들은 “바이러스보다 과로사가 더 두렵다”고 말했다.

만약 1년 전 저런 글을 읽었다면 섬뜩한 상상력으로 써 내려간 공상과학(SF) 소설일 거라고 넘겨짚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저것은 올봄 한국인 모두가 보거나 듣거나 경험한 이야기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에 참여한 필진 중 한 명인 김동은 대구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저런 이야기와 함께 대구 시민들이 혐오와 낙인 탓에 받은 상처를 언급하면서 “현장에서 큰 힘을 주었던 말들”을 소개한다. 세월호 유가족인 “경기도 안산 은화, 다윤 엄마”가 보낸 소포가 대표적이다. 소포에는 핸드크림과 함께 응원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함께하는 많은 사람 덕분에 팽목항의 세찬 바람을 견딜 수 있었듯, 지금도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힘내세요.”

책에는 김 교수의 글 외에도 간호사 수의사 종교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12명의 글이 실려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어떻게 한국사회를 바꿔놓았으며 어떤 과제를 남겼는지 정리한 글들이다.

크리스천 독자라면 백소영 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가 쓴 ‘전염병과 종교’라는 글에 눈길이 갈 것이다. 그는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가 벌이는 “자발적 소유 나눔”이 “시민사회의 공동체적 덕목”이 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religion’의 어원이 ‘다시 연결하다’라는 라틴어 ‘religare’라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다시 연결되기 위해서 각오하는 사람들, 그들이 종교인이라면 감염병 시대에 신앙인들의 영적 민감성은 새로운 관계 방식을 상상하고 만들고 실천하도록 이끌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요 자산이 될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