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와 뭉크 사이… 가장 영국적인 풍경화

입력 2020-06-06 04:06 수정 2020-06-06 04:06

화병에 국화가 꽂혀 있다. 줄기는 꿈틀거리고, 꽃잎은 하나하나 터치가 살아있다. 그런데 꽃의 상태는 절정기에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찾아올 죽음을 예고하듯 색은 퇴색해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영국 작가 빌리 차일디쉬(61)의 이 정물화 ‘어머니의 화병에 꽂힌 국화’(사진)는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해바라기’의 오마주 같다. 그러면서도 색감과 메시지는 고흐의 대척점에 있는 듯하다. 화폭에는 정열 대신 음울함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리만 머핀 갤러리에서 차일디쉬의 한국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작가는 가장 전통적인 장르인 풍경화와 정물화를 주로 그린다. 그런데 풍경화나 정물화 특유의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중간색 톤이 주는 우울감과 스멀거리는 붓질이 결합해 스산하기 그지 않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호숫가의 낙조 풍경에서도 하루를 마감하는 관조의 정서는 없다. 사냥감을 좇는 늑대를 그린 풍경에서는 마치 내가 쫓기는 기분마저 든다.

그의 작품에선 표현주의의 맥을 잇는 두 화가 고흐와 에르바르트 뭉크가 동시에 연상된다. 풍경을 표현한 꿈틀거리는 붓질에선 고흐가, 어두운 색조와 일그러진 형상에서는 뭉크가 떠오른다. 하지만 뭉크의 회화에서 절망과 공포가 느껴진다면 차일디쉬의 회화에는 우울과 상실의 정서가 있다.

차일디쉬의 캔버스를 지배하는 저 우울과 불안은 어디서 발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6월에도 뼛속을 파고드는 영국의 음산한 날씨에 기인할 수 있다. 작가 내면의 표출, 혹은 영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풍경에 담았을 수 있다. 그 어느 것이든 가장 영국적인 풍경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2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