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 1심 선고가 있기 하루 전인 2010년 4월 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한신건영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2차 한명숙 사건’ 수사 착수가 공개되자 한 전 총리와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별건 수사’라고 반발했다. 검찰은 제보에 따라 내사를 한 ‘신건 수사’라고 받아쳤다. 10년이 지났고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죄가 확정됐지만 양측 공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변한 건 당시 결백을 주장하던 야당이 177석을 가진 거대 여당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검찰과 한 전 총리의 악연은 뇌물수수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은 2009년 12월 한 전 총리를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곽 전 사장은 재판에서 “돈 봉투를 직접 준 게 아니라 식탁 의자 위에 두고 왔다”고 번복했다. 결국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검찰의 완패였다.
2차 사건 수사 착수는 이런 상황에서 공개됐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조차 “무죄가 날 것 같으니 또 하나를 찾겠다는 건 당당한 태도가 아니다”고 말했었다. 그만큼 여야 모두에 ‘정치적 수사’라는 눈초리가 있었다. 검찰 특수부로선 사활이 걸려 있는 수사였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도 1차 수사는 곽 전 사장 진술에 의존했던 면이 있었지만 2차 수사는 물증이 확실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한 전 총리 여동생이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 측이 발행한 수표 1억원을 전세금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또 한 전 총리 보좌관이 2억원을 한 전 대표에게 돌려준 사실이 있었다. 이밖에 한 전 대표의 ‘채권회수목록’에도 금품공여 사실이 기재돼 있었다. 한신건영 직원은 “한 전 대표가 ‘의원님에게 줄 돈이다. 은팔찌 차고 안 차고는 너 하기 달렸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금품을 담았다는 캐리어를 구매한 영수증도 나왔다.
무엇보다 수사 과정에 협력했던 한 전 대표의 진술이 중요한 증거였다. 하지만 2010년 12월 한 전 대표는 재판에서 “돈을 주지 않았다”고 진술을 바꿨다. 검찰에선 ‘뒤통수를 맞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 전 대표가 작성했던 이른바 ‘비망록’은 검찰이 진술 번복 경위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압수해 법원에 제출했다. 1심은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표적 수사와 강압 수사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수사는 제보에 의해 시작됐고 한 전 대표도 수사에 강압은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점 등이 근거였다.
최근 새로 제기된 의혹은 한 전 대표의 구치소 동료들에게 검찰이 거짓 진술을 교육시켰다는 것이다. 수사팀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증인들이 자발적으로 검찰도 몰랐던 사실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구치소 동료 최모씨는 당시 공개 법정에서 “한 전 대표가 총리님에게 돌려받을 7억원이 있고 출소하면 한모씨(구치소 동료)와 사업을 한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한씨는 검찰에서 “친노 인사인 법조인이 한 전 대표가 진술을 번복하면 돈을 돌려주기로 약속했다”는 얘기도 했다. 검찰은 한씨의 주장은 믿을 수 없어 증인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씨와 최씨는 아직 수감 중이다.
여당은 유무죄를 떠나 수사에 절차적으로 잘못된 게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재소자들은 검찰에 악감정이 있기 마련”이라며 “일방적인 주장을 근거로 정치권이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