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77)은 한국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그건 이제 낡은 이야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로커 밥 딜런이 선정된 일을 거론했다. 그는 “(스웨덴) 한림원이 미국 작가 필립 로스를 안 주고 밥 딜런에게 상을 주더라”면서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자국 작가가 아닌 이상 노벨상 받아도 이제 해외 매체들은 단신으로 처리할 뿐이에요. 저도 별로 관심 없어요. 기자들만 소동을 부려요. 한림원이라는 곳, 사실 유럽의 변두리잖아요. 그런 곳에서 노인네들이 모여 수상자를 정하는데, 그들이 뭘 알겠어요? 동아시아 여행 경험이나 있을까요? 노벨상보다는 지금은 사라진 (제3세계 최고 권위 문학상이었던) 로터스상 부활에 힘을 보태고 싶어요.”
황석영의 발언이 쏟아진 것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였다. 간담회는 그가 ‘해질 무렵’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신작 장편 ‘철도원 삼대’(창비)를 소개하는 자리. 황석영은 “2017년 자서전 ‘수인’을 발표하고 나니 ‘작가로서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작가에겐 은퇴 시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니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며 “‘철도원 삼대’를 쓰면서 젊을 때처럼 하루에 8~10시간씩 글을 썼다”고 덧붙였다.
‘철도원 삼대’는 이백만→이일철→이지산으로 이어지는 철도 노동자 3대(代)의 가족사에, 이백만의 증손인 해고 노동자 이진오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황석영이 소설을 처음 구상한 것은 1989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당시 그는 평양백화점에서 서울말을 쓰는 한 노인을 만났는데, 서울 영등포가 고향이라는 노인은 일제강점기에 기관수로 일하면서 대륙을 넘나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시절 조선의 아름다운 산과 강과 골짜기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노인이 당시 칠순이 넘었을 거예요. 백화점 부지배인이었죠. 내가 유년기를 영등포에서 보냈기 때문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노인과 대여섯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주 재밌었고 감동도 받았어요. 언젠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했죠.”
‘철도원 삼대’는 한국 노동운동 100년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황석영은 ‘작가의 말’에 이런 글을 적어두었다. “우리 문학사에서 빠진 산업노동자를 전면에 내세워 그들의 근현대 백여년에 걸친 삶의 노정을 거쳐 현재 한국 노동자들의 삶의 뿌리를 드러내보고자 하였다.”
간담회는 한 차례 취소됐다가 다시 열린 행사였다. 출판사 창비는 지난달 28일 같은 장소에서 간담회를 열기로 했으나 전북 익산에 사는 황석영이 늦잠을 잔 탓에 취소됐었다. 황석영은 “간담회 전날 (5·18 40주년 관련 행사에 참석하느라) 광주에 갔다가 막걸리를 한잔 했다. 조선술이 끈기가 센지 술이 안 깨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