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이] “온라인 수업 굉장히 잘돼… 대입, 논술로 바꿔야”

입력 2020-06-03 04:03 수정 2020-06-03 04:03
이범 교육평론가는 ‘에듀 폴리틱스(교육정치학)’라는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 “진보 교육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우리나라 진보 교육계는 ‘우리가 올바르니까 정치라는 관문을 통해서 실행만 하면 된다’ 이런 경향이 있는데 그건 정치를 폄하하는 위험한 생각이에요.” 최현규 기자

코로나19로 학교에도 온라인 개학과 수능 2주 연기, 순차적 등교라는 사상 초유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 3일에는 고1과 중2·초3~4학년이 등교하게 된다. 지난달 20일 고3이 처음 등교한 이후 3차 등교로, 오는 8일 마지막으로 중1·초5~6학년이 등교할 예정이다. 교육평론가 이범(51)씨에게 순차 등교와 그간 진행된 온라인 수업에 대한 평가, 코로나19로 인한 교육 환경 변화 등에 대해 물었다. 서울대 대학원 시절 학원가에 발을 디딘 이씨는 연봉 18억원의 대치동 과학탐구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2003년 사교육 시장을 떠난 이후 교육평론가로 활동하며 서울시교육청 정책보좌관, 더불어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 지난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하며 고교학점제 등 교육 공약을 만들었다.

-교육부가 수도권 초등학교와 중학교 등교 인원을 3분의 1 이하로 줄였지만 학부모들의 불안은 여전하다. 예정대로 등교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정부가 학교를 연 것은 경제논리가 아니라 교육논리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이 장기화되면 학습 부진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셧다운하면서 부모들이 출근을 안 했지만 우리는 맞벌이 가정 등의 보육 문제도 있지 않나. 또 유럽과 미국은 학년 중간에 셧다운됐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서 과제를 내주든 온라인 수업을 하든 교육하기 쉬운 조건인데, 우리는 새 학년 시작을 못 했으니 교사가 학생들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여러 상황을 종합해 정부가 개학을 해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3 확진자가 부산에서 발생했는데, 내신에 관계된 중간·기말고사를 봐야 할 경우 상황이 복잡해질 것 같다. 중간·기말고사는 온라인 시험이 어려울 텐데.

“그런 학생이 많지는 않겠지만 최악의 경우 앰뷸런스 안에서 시험을 쳐야 하는 상황도 있지 않을까. 수능날에도 격리 상태에 있어야 되는 학생들을 위해 미리 별도의 시설과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수능 출제 역시 문제다. 합숙 출제하는 분 중에 확진자가 나오거나 격리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 큰일 아닌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수능 병행 출제를 준비해야 된다고 본다. 합숙 출제로 시험문제 한 벌을 만들고, 다른 한 벌은 합숙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드는 거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을 때 교육 당국이 준비해야 될 부분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에 이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9월 신학년제 도입 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원칙적으로 9월 학기제에 찬성한다. 하지만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코로나19 때문에 갑자기 도입하는 건 위험하다. 9월에 코로나19가 더 심해질 수도 있고, 확진자가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은가. 일단 지금은 이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3개월째를 맞는 온라인 수업은 어떻게 평가하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굉장히 잘 됐다. 지난 3월 우리나라보다 먼저 온라인 수업을 시작한 영국 고등학교를 둘러봤다. 쌍방향 실시간 수업을 잘 하는 곳도 있지만 우리나라만큼 보편적인 교육을 제공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는 EBS와 교육학술정보원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이 있어서 그걸 활용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이 가능한데, 영국은 국가적인 플랫폼 없이 학교 자율로 하고 있어서 편차가 심했다. 우리나라는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달랐다.”

-올해 고3 학생들의 아우성이 대단하다. 수능이 2주 늦춰졌지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수능 한 달 연기론을 꺼냈다. 고3 학생들이 재수생에 비해 불리하지 않도록 마련할 대책은 없을까.

사진=최현규 기자

“수시의 경우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합격자 중에 재수생 비율이 작년 대비 너무 높아지지 않게 조절한다든지, 교육부가 그런 가이드라인을 주는 방법이 있다. 수능 연기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올해 고3이 가지고 있는 억울함이나 불공정함에 대한 불만을 보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수능을 더 연기하게 되면 내년에 한해 대학입학 일정을 한 달쯤 늦추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대입제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그동안 대입시험을 과목별 논술형으로 바꾸자고 주장해왔는데.

“OECD 35개 국가 중에 대입시험이 없는 나라는 캐나다와 노르웨이뿐이다. 33개국 중 대입이 객관식인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 터키 칠레 멕시코 6개국이다. 객관식은 창의력 함양과 상충하니까 유럽의 경우 논술형으로 만들었다. (영국의 수능인) A레벨 문제를 봤는데 한국전쟁에 개입한 스탈린의 의도에 대해 써보라고 하더라. 영국도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니까 그렇게 배우는 거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도 다 그렇다. 우리나라 논술고사는 족보가 꼬인 이상한 시험이다. 15년 장기 계획을 세워 대입시험을 논술형으로 바꿔야 한다고 본다.”

-미국 SAT도 객관식 아닌가.

“SAT는 객관식이지만 고등학교 시험은 다 논술형과 수행평가다. 미국은 학교에서 SAT 준비를 안 해준다. 학교 교육을 입시와 분리시켜서 정규 수업에서는 객관식 문제 풀이를 안 한다.”

-우리가 독특한 대입 시스템을 갖고 있는 건가.

“한국은 입시제도 안 해 본 게 없다고 하는데, 생판 거짓말이다. 미국식 모델도, 유럽식 모델도 안 해봤잖은가? 고등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하면 안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유럽에선 대놓고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을 한다. ‘너 대학 갈 거지? 관문이 대입시험이고. 이게 고등학교 교육의 총화야. 그래서 학교에서 같이 준비해 줄게’. 그게 유럽 시스템이다.”

-코로나19로 교육에도 일대 변화가 생겼다. 미래 교육이 5년은 앞당겨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코로나로 인한 교육 환경의 변화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IT 기술 중심으로 새로운 교육 방법이 전면화됐다. 공교육에서 대규모 원격교육을 세계적으로 경험하게 된, 교육사적인 사건이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교육의 단위가 학교가 아닌 개인이라는 점이 부각된 것이다. 온라인으로 배우면 학생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꼭 학교 소속일 필요가 없다. 교육학의 ‘개별화 교육’이라는 개념인데, 같은 반에 있어도 학생 각각의 능력과 요구가 다 다르지 않나. 거기에 맞춰 개개인에 따라 특성화된 교육을 할 수 있느냐, 이런 논의가 이뤄졌는데 온라인 교육이 되면서 이 수준을 완전히 뛰어넘는 논의가 가능해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어떤 것이 될까.

“정부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은 플랫폼을 설계하고 제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국가 중심의 플랫폼이 구축되면 학교나 교사라는 매개를 거치지 않고 학생의 배움의 설계가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영어 발음을 익힐 때 굳이 교사에게 배울 필요가 없어진다. 게임형으로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멀티미디어 콘텐츠가 많다. 새로운 쌍방향 상호작용 콘텐츠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형 뉴딜 사업에 비대면 교육이 포함됐고, K에듀테크라는 말도 나온다. 교육부와 과기정통부, 산업부 등 범부처 협의체 외에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도 에듀테크 TF가 꾸려졌다. 활성화 방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할까.

“정부가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저는 거기에 일종의 종량제형 콘텐츠 오픈마켓을 결합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예컨대 영어 발음을 익히는 프로그램을 여러 업체에서 제공하고, 교사가 학생 특성에 맞게 어떤 프로그램들을 이용하라고 과제를 준다고 해 보자.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양에 비례해서 정부가 그 업체에 종량제로 비용을 지불하는 거다. 거기에 학생 진단의 일부분을 인공지능에게 맡긴다든지, 이런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정 수준만 갖춰도 오픈마켓에 참여할 수 있게 하면 민간 업체 외에 교사나 개인이 만드는 것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학종, 대입제도 공론화, 자사고 재지정 논란 등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교육 관련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의 교육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정부의 교육 정책과 부동산 정책을 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대조점을 보인다. 부동산은 정부에 가격 결정권이 거의 없으니 정부가 힘이 미약한 상황인데도 일방적인 규제를 펼치고 있고, 교육 정책은 정부가 강력한 권한을 활용해 대부분의 공약을 실현시킬 힘이 있음에도 정리를 못 하고 있다. 자사고 문제도 그냥 교육감한테 공을 넘겨 버려서 지난해 재지정 논란이 벌어진 거다. 결국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한 시기가 2025년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애매하게 가다가 사실상 다음 정부에 넘기는 거다. 문재인정부에서 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은 더 이상 별로 없다고 본다.”

만난 사람=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