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애월읍 금산공원 곶자왈에서 지난 1일 후박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거리두기를 하듯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하늘 높이 가지를 뻗고 있다. 마치 하늘에 꼬불꼬불 오솔길을 낸 것 같다. 숲속 나무들이 이렇게 자라는 모습을 수관기피 현상이라고 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모두가 안전해지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듯, 나무들도 다 같이 원활한 광합성을 하기 위해 이런 간격을 유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빽빽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제주 곶자왈.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춤을 추듯 움직인다. 지난 1일 그 숲에 들어가 하늘을 올려보자 신기한 현상이 펼쳐졌다. 가지치기라도 한 것마냥 나무들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 수관기피(Crown Shyness) 현상. 나무의 꼭대기(crown)가 수줍어하듯(shyness) 서로 닿지 않게 ‘거리두기’를 하며 자라는 모습을 이렇게 부른다.
나무와 가시덤불이 뒤엉킨 제주 애월읍 금산공원 곶자왈에 지난 1일 여린 잎을 내민 각종 나무들이 숲을 푸르게 물들이고 있다. 울창한 나무들은 햇빛을 고르게 나눠 받기 위해 이렇게 서로 거리를 유지하며 자라곤 한다.
하늘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본 제주 금산공원 곶자왈.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자기 영역을 넘어서지 않고 자라면서 기하학적인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숲속 나무는 대개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수관(樹冠·나무줄기 꼭대기에 가지와 잎이 갓 모양을 이룬 부분)을 주변 나무보다 높고 넓게 형성하려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수관을 넓히다 보면 이웃 나무와 겹치고, 겹친 부분의 잎은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넓게 자라려는 본능을 억누르고 서로 배려하며 거리를 두는 현상이 나타난다. 수관기피로 생기는 간격은 나무들이 동반성장에 합의해 만들어낸 평화의 공간인 셈이다.
지난 1일 제주 조천읍 사려니숲길의 삼나무들이 각자 자리를 지키며 하늘을 향해 가지런히 뻗어 있다. 360도 촬영이 가능한 리코세타360 카메라로 촬영했다.
모든 숲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비슷한 수령의 나무가 함께 자랄 때, 특히 같은 수종 사이에서 이 현상이 두드러진다. 바람에 서로 부딪치거나 병충해가 퍼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가설도 있다. 사람들이 빽빽한 빌딩 숲에서 다닥다닥 붙어사는 모습은 나무와 덩굴이 뒤엉킨 숲속과 비슷한데,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고서야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자연의 지혜를 실천하고 있다. 나무들의 거리두기는 수천 년간 조화롭게 숲을 이뤄 온 어울림의 미학이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 메타세콰이어 숲, 나무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라고 있다.
강원도 평창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들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라고 있다.
제주 구좌읍 송당리 안돌오름 근처에 위치한 비밀의 숲,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자라고 있는 편백나무 나뭇잎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있다. 그 간격 덕분에 가지들 틈새로 햇살이 바닥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바람에 가지들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도 옆 가지에 부딪혀 서로 생채기를 입히는 일이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