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윤미향의 과도한 대표성

입력 2020-06-02 04:02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의 예금 3억2133만원은 위법이 아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기부금과 윤 의원 일가 재산의 연결 고리는 드러난 게 없다. 대한민국에 이 정도 예금을 가진 사람은 꽤 많다. 2019년 7월 금융감독원 기준 우리나라 예금 계좌 1억4456만개 중 1억원 이상 계좌 수는 71만272개나 있다.

윤 의원 가족은 경기도 수원의 아파트를 경매로 샀는데, 은행 대출금이 없다는 게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아파트 구매 방식은 다른 법이다. 딸의 미국 유학도 문제는 없다. 2019년 4월 교육부 통계 기준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인 학생은 5만5101명이다. 5만명의 학생 집안이 모두 부유할 리 없다. 가난한 고학생도 많을 것이고, 그중엔 오래된 포르쉐를 타는 학생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미심쩍은 대목이나 이해하기 힘든 대목들이 있다. 30여 년간 위안부운동에 헌신했던 윤 의원의 월급은 30만원에서 시작해 50만원, 80만원으로 늘었다. 월급이라기보다 활동비 성격이었을 것이다. 정대협 상임대표나 정의연 이사장 시절 월급은 알려진 바 없다. 윤 의원은 각종 강연과 인세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모두’ 기부했다고 스스로 말해 왔다. 윤 의원의 남편도 돈과 별로 관련 없는 진보운동에 오래 몸담았다가 지역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파트를 구입한 돈이나 딸의 유학자금 출처에 대한 해명이 달라졌지만, 굳이 이해하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재산 형성의 복잡한 개인사를 외부에서 모두 알 수 없다. 진보적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예금이 없어야 하고, 집도 전세여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정대협과 정의연의 회계는 불투명하거나 실수가 잦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관행이었다”고 하니 이해할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윤 의원은 1992년 정대협 활동을 시작해 2002년 정대협 사무총장, 2005년 정대협 상임대표가 됐으며 2018년 정의연 이사장을 지냈다. 정대협과 윤 의원은 국민과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 단일 주제 집회로는 세계 최장 기록인 1441회의 수요집회도 주도했다. 28년 대부분 기간 재정은 열악했을 것이고, 많은 유무형의 협박과 탄압, “이제 그만하라”는 회유도 많았을 것이다. 불투명한 회계 관행은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고된 시기의 상처 정도였을 것이다.

윤 의원 일가의 돈에는 범죄 딱지가 붙지 않았고, 불투명한 회계는 관행이니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문제는 대표성이다. 윤 의원은 지난 3월 페이스북에 출마 소식을 알리며 “30년이 넘는 여성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할머니들께서 주신 유언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이 벌인 오랜 운동을 대표해 국회의원 후보에 발탁됐다. 윤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의 유언을 실현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대표성과 명분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윤 의원을 비판한 이후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많은 사람의 선의가 윤 의원에 의해 왜곡됐을 가능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윤 의원이 가졌던 과도한 대표성이 수많은 사람의 헌신으로 이뤄졌던 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윤 의원은 억울하겠지만, 윤미향이라는 개인이 지녔던 과도한 대표성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이것은 위안부운동의 업적과는 별개의 문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검찰 개혁과 동의어가 아니었던 것처럼, 윤 의원이 위안부운동과 동의어는 아니다.

남도영 편집국 부국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