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이 2, 5세 때 이혼한 뒤 32년간 연락조차 끊고 살던 생모가 둘째 딸이 소방관으로 일하다 순직하자 갑자기 나타나 딸의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받아갔다. 이에 분노한 소방관의 아버지와 언니는 생모에게 거액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씨(당시 32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는 구조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가족과 동료 곁을 떠났다. 의사소견서에 따르면 A씨는 소방공무원 생활 중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충동조절 어려움과 인지기능 저하에 시달렸다. 그는 휴직 후 지속적인 치료에도 근무시절 목격한 사고사 장면이 반복해 떠오르는 증상으로 증세가 더 악화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아버지인 B씨가 청구한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이때부터다. 공무원연금공단은 이와 비슷한 시점에 어머니인 C씨(65)에게도 이러한 결정을 알렸다. C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의 일부를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알게 된 B씨는 지난 1월 전처인 C씨를 상대로 1억8950만원의 양육비를 청구하는 가사소송을 전주지법 남원지원에 제기했다.
C씨는 1988년 이혼한 뒤 B씨가 도맡아 키우던 두 딸을 한 번도 보러 오거나 양육비를 부담한 적이 없었다. 또 둘째 딸인 A씨의 장례식장에 조문조차 오지 않았다. 그런 C씨가 딸의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B씨는 전처 C씨가 부모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이혼 시점을 기준으로 자녀 1명당 성년이 된 해까지 매달 50만원씩을 내라고 청구했다.
A씨 유족들의 주장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가수 구하라씨 유산 일부를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모가 받자 구하라씨 오빠가 이른바 ‘구하라법’을 제기했을 때와 마찬가지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상속자격을 주면 안 된다는 내용의 이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됐다.
친모 C씨는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을 뿐”이라며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고, 두 딸에 대한 애정엔 변함이 없다”는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A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31일 전화통화에서 “양육의무를 전혀 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유산 상속권한을 보장받는 것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다”며 “현재 이를 제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