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명단없는 피해자 4만명… “어떻게 입증하나”

입력 2020-06-01 04:03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대표(오른쪽) 등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지난 20일 통과되면서 33년간 묻혀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하지만 형제복지원 피해자 중 ‘이름 없는 피해자’가 수만명에 달해 이들은 진상규명 과정에서 존재를 부정당할 위기에 놓여있다.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이춘석(60)씨는 “나는 1971년 부산 길거리에서 구걸하다 형제원에 잡혀간 ‘형제복지원 1세대’”라며 “억울함을 씻을 수 없어 십여년 전에 직접 형제복지원을 찾았는데 원생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자신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란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상태다.

이씨는 입소 첫날부터 겪은 끔찍한 경험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이씨는 “입소하자마자 가죽 허리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았다”며 “이후엔 연일 낚싯줄 감기 작업에 동원돼 매일 낚싯바늘에 손가락이 터져 피가 흘렀다”고 기억했다.

그는 당시 소대장이었던 김모씨의 이름을 잊을 수 없다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피해자가 강제노역만 한 줄 알았는데, 당시 시체를 팔았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형제복지원 전경과 식사방식, 폭행 사건 등을 세세히 설명하며 “도망 나오기 전까지 8년간 겪은 일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여준민 형제복지원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31일 “(이씨처럼) 명단에 없는 피해자가 최소 3만~4만명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형제육아원까지 범위를 넓히면 60년 말부터 해산일인 87년까지 피해자가 있지만 입·퇴소자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은 85년도 7월에서 12월까지 6개월치뿐이다. 형제복지원에서 발간한 홍보지(새마음)나 김용원 검사가 만든 증인목록 등에 피해자 명단은 모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상태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도 “피해자인데 명단에 없는 이들이 95%”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씨처럼 피해자 명단에 없는 이들은 진상조사나 추후 진행될 수 있는 피해보상 과정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형제복지원 관련 활동가들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피해자 관련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민성 부산시의원은 “형제복지원이 87년에 해산됐을 때 구덕원, 그리스도구원선, 오순절 평화의 마을 등 주변 시설로 피해자들이 흩어졌다”며 “복지원뿐만 아니라, 이러한 주변 시설들 혹은 부산시 서고 등으로 자료확보 창구를 넓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구술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방법이다. 한 대표는 “정부가 자료팀과 더불어 구술팀도 꾸릴 것으로 기대한다”며 “명단에 이름이 없는 피해자들도 기억을 유지하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씨도 “명단에 내 이름은 없지만, 분명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테니 증언이 나올 것”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강보현 기자 bob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