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정 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 불안과 식량 부족,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됐다.
한국은행은 31일 공개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신흥국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서 금융 불안 재현, 식량 수급 악화, 인플레이션 확대를 코로나19 사태 후 신흥국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로 꼽았다.
이들은 선진국 중앙은행과 국제기구가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막대한 규모로 공급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신흥국의 금융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이 유동성을 일부 회수하는 동안 주가 급락 같은 금융 불안이 빈발한 바 있다. 유럽 각국에서 재정 위기가 잇따른 건 2009년 말부터다.
재정 여건이 이미 취약했던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일부 신흥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 지출을 확대하면서 재정건전성이 더 나빠진 상황이다. 정부 부채비율이 높은 신흥국은 경기 위축과 유가 급락에 따른 재정수입 감소로 부채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흥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재정 여력을 쏟아부은 만큼 향후 금융 불안이 나타났을 때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펴기 어렵다. 게다가 채무 부담이 커진 터라 정부와 기업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년 3월까지 신흥국 내 투기등급 회사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비율이 최대 13.7%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세계적 봉쇄 조치로 향후 식량 생산이 감소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미국과 서유럽은 각각 멕시코와 북아프리카, 동유럽에서 넘어오는 외국인 노동자가 줄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도는 이주노동자 이동 제한으로 중북부 곡창지대 경작에 차질을 빚었다.
물류 이동을 제약하는 공급망 훼손으로 세계 식량 수급망이 교란될 우려도 있다. 각국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수출을 제한하거나 재고 비축을 늘리면 수급 불일치가 더욱 커진다. 올해 3월 말부터 인도 러시아 베트남 등이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자 쌀과 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다른 소비가 줄면 신흥국의 경제 회복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식량 부족 심화와 식량 가격 급등은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2007~2008년 수출 제한 등으로 식량 가격이 급등했을 때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신흥국은 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식량 부족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개연성이 크다. 농산물은 봉쇄 조치 등에 따른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하면 가격변동성이 커지면서 물가 불안의 주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아태경제팀은 “단기간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서도 “코로나19 진정 이후 신흥국에 현실화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