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 아나운서(방송원)의 영역이 확장했다. 지금까지는 경직된 말투로 뉴스를 전달하던 모습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젊은 아나운서가 만능 재주꾼의 면모를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북한의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다. 최근 조선중앙TV의 변신이 놀랍다. 저녁 8시 메인 뉴스를 진행하던 김은정 아나운서가 지난 2월 20일 온천 앞에 섰다. 북한의 대표 관광지 양덕온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직접 현장을 찾았다. 방송에서 그는 온천에 몸을 담갔다. 그동안 북한 여성 아나운서 대다수는 뉴스룸 밖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전과 비하면 파격적 행보다. 이날 그는 자주색 상의를 입었다. 공식 석상에서 한복이나 정장만 입었던 여성 아나운서가 레이스가 달린 반팔 차림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선 것은 이례적이다. 며칠 전 그는 앞치마를 두르고 잉엇국을 요리하기도 했다.
경력도 특이하다. 김 아나운서는 연기자 출신으로 2009년 예술영화 ‘생명선’에 출연했다. 북한은 대학 전공이 곧 직업으로 이어지면서 장르를 바꾸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연기자가 북한 체제의 입이 되는 아나운서가 된 건 전례없다. 이런 파격은 북한 대표 방송 조선중앙TV에서 이뤄졌다. 형식과 절차보다 능력과 재능을 중심으로 채용 기회를 넓히면서 폐쇄적이던 방송 관행이 유연해진 모양새다. 더욱이 김 아나운서의 진취적 행보에 북한 내 여성의 사회적 위치가 확장됐다는 평도 나온다.
과거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에서는 리춘히 아나운서를 비롯해 나이가 지긋한 여성 아나운서가 많았다. 모두 격식을 갖춘 차림에 다부진 표정, 격앙된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20~30대 여성 아나운서가 메인 앵커를 맡는가 하면 방송 기법도 세련돼 졌다. 그래픽의 경우 데이터 시각 기법 등을 녹이면서 한결 풍성해졌다. 다만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을 뿐 내용은 여전히 체제 선전이 주를 이룬다.
박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