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이뤄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은 보는 내내 마음을 착잡하게 했다.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한 것은 이 할머니가 기자회견에서 사과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세계의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해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또 “‘여자이기 때문에 위안부가 됐다’는 소리를 (모든 여성들이) 들어봤을 것”이라며 “(이로 인해) 여자라는 두 글자가 손상을 입었다”고 울먹였다.
대체 왜 이 할머니가 사과를 해야 되는지 의아했다. 스스로가 암울했던 역사의 피해자다. 나라 잃은 설움과 악랄한 일제의 만행을 온몸으로 겪었다. 그런데 여성으로서 일본에 위안부로 끌려갔고,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도 받아내지 못한 게 죄송하다고 했다. 본인이 여성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했다는 순수한 마음가짐에서 우러난 진정성 있는 사과였다.
하지만 정파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다르게 보이나보다. 극우 세력을 중심으로 위안부 피해자 관련 운동을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움직임이 나온다. 극우 유튜버 집단은 위안부 문제를 ‘집단 사기극’이라고까지 주장한다. 한 유튜버는 “이용수 할머니는 내부고발자인 동시에 위안부 국제사기단의 일원이라고 본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진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이 할머니에 대해 “치매다. 노망이 났다” 등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회견 직후 일부 포털에선 “이 할머니 옆에 야당 국회의원이 있다”는 식의 가짜뉴스까지 난무하는 등 본질을 흐리는 글까지 올라왔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이러니하게 정의연이 잘 알고 있다.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이용수 선생님의 기자회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마음이 아프고 진심으로 송구하다. 깊은 고통과 울분, 서운함의 뿌리를 우리 모두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또 “지난 30년간 투쟁의 성과를 이어가되, 피해자들의 고통이 해소되지 않고 문제 해결이 지연된 근본 원인을 스스로를 돌아보며 재점검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고 밝혔다. 무릇 이 할머니의 사과를 봤다면 응당 이런 반응이 정상이다. 정파적 사고를 가진 분들에게 다시 한 번 이 할머니의 사과 동영상을 보길 권한다.
정의연 사태의 또 다른 당사자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당당한 모습이었지만 무척 긴장됐는지 연신 땀을 흘리며 “국민께 사죄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윤 의원에게선 진정성을 보기 어려웠다. 우선 시간과 장소가 적절치 않았다. 정식 국회의원이 되기 딱 하루 전 기자회견을 열었고, 장소도 국회였다. 본인 스스로가 떳떳했다면 좀더 일찍, 다른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어야 했다. 그러니 기자회견 내내 그에게 보이는 건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뿐이었다. 모든걸 버려도 국회의원 자리는 놓칠 수 없다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또 회견에서 여러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의혹 해소도 실패했다. 실제 횡령 의혹에 대해선 “아니다”라고만 했을 뿐 통장 사본 하나 내놓지 않았다.
국회의원이라는 자리가 왜 그렇게 탐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윤 의원은 결국 지난 30일 그토록 바라던 ‘의원님’이 됐다.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 민주당에서도 윤 의원을 옹호하고, 본인 스스로도 절대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같다. 그렇다면 부디 ‘의원님’의 특권을 자신의 전공인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만 쏟기 바란다. 검찰 수사 때도 특권을 사용하지 말고 성실히 임해줬으면 한다.
모규엽 사회부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