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등교 귀신’ 붙은 모습이 더 교육부답다

입력 2020-06-01 04:06 수정 2020-06-01 17:26

다른 언론사 교육부 담당 기자가 며칠 전 “지금까지 본 댓글 중 가장 짧고 웃기다”며 카카오톡으로 전해준 한마디. ‘등교 못해 죽은 귀신이 붙었나 보다.’ 브리핑마다 “등교 연기는 없다”고 외치는 교육부를 향한 누군가의 일침이었다. 등교 반대 청원 수십만명에도 꿋꿋한 교육부 사람들 어깨 위로 부유하는 귀신들이 떠올려지자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몇 주 전 우연히 낀 미취학 아동 엄마들 모임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교육부 담당 기자란 걸 들은 한 엄마가 “교육부는 등교 못해 안달난 사람들만 모인 거 같다”고 했다.

교육부 입장에서 보면 미스터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불씨가 이리저리 튀는 마당에 등교 결정은 도박에 가까워 보인다. 등교에는 학교생활을 갓 시작한 초등학생부터 질풍노도라는 중학생, 입시·취업에 민감한 고교생까지 학생 수만큼이나 다양한 변수가 상존한다. 만약 싱가포르처럼 학교가 재확산의 진원지가 된다면 국민적 지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K방역 홍보용일까. 선거를 앞두고 있다면 몰라도 홍보로 얻는 이득보다 떠안을 리스크가 훨씬 크다. 오히려 K방역을 계속 자랑하려면 등교 안 시키는 편이 낫다. 그럼 교육부가 K방역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숟가락 얹자고 직을 걸 만큼 교육부 사람들이 무모하진 않다. 일이 틀어지면 국정 교과서 때처럼 고립무원이 될 게 뻔하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더 큰 몽둥이를 쥘지도 모른다. 교육부에 편하고 안전한 길은 분명 등교를 안 시키는 쪽이다. “등교는 불가, 교육감이 원하면 협의는 가능” 정도로 입장을 정리하면 지난 3월부터 하는 월화수목금금금 도시락 대책 회의는 중단해도 될 것이다.

당장 편한 길보다 나중에 덜 힘든 길을 택했다는 추론은 가능해 보인다. 원격수업이 길어질수록 교육 격차 문제는 교육부를 옥죄어 올 것이다. ‘있는 집’ 자녀라면 등교 안 해도 문제될 게 없다. 학원이 문을 닫으면 과외 교사를 부르면 그만이다. 부모의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누리며 교육 타이밍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공교육 파행이 길어지는 상황이 싫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공교육에 많이 의존하는 계층일수록 다급하다. 어릴 적 벌어진 격차는 나중에 만회하기 쉽지 않다. 맞벌이 가정이나 소외계층 아이들 손에 쥐어준 스마트기기는 독이 될 수 있다. 교육부는 격주든 격일이든 오프라인으로 교사와 대면해야 원격수업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했어야 나중에 할 말이라도 있을 것이다.

공부는 작은 부분일 것이다. 정서적 타격은 아마도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초등 저학년들을 한번 보자. 또래 행동을 모방해 서로 배우고 성취감과 좌절감을 맛봐야 하는 시기다. 같이 놀며 룰을 지키고 협상하고 배려하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한 자녀가 많은 요즘 가정에선 쉽지 않은 일이다.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과의 교감도 소중한 부분이다. 교사의 따뜻한 격려와 조언은 때로는 부모의 그것보다 아이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중학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또래집단에서의 소속감이 인격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가정 폭력이나 방치 같은 위기 상황을 모니터 속 교사는 알아채기 어렵다. 공부처럼 나중에 만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등굣길이 막힌 아이들은 분명 무언가를 상실해가고 있을 것이다.

고3을 빼고 나머지 학년을 원격수업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기약이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올가을 대유행을 염려하는 방역 전문가들이 많다. 백신 나오는 향후 2~3개 학기는 코로나19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관측을 덧붙이기도 한다. 마냥 백신을 기다리며 ‘학생 건강이 제일’ ‘원격으로도 충분’을 외치는 교육부는 과연 믿음직한가. ‘등교 귀신’이라도 붙은 듯 한 명이라도 학교로 모으려는 게 더 교육부다운 행동 아닐까.

이도경 사회부 차장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