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당국이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예고하며 기준금리를 ‘빅 컷’(대폭 인하) 한 달 만에 0.25% 포인트 더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한국 경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초저금리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환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28일 경제전망 설명회에서 “세계경제 여건과 코로나19 전개 양상 및 경기 흐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올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3.1%로 제시했다.
지난 2월 2.1%로 판단한 지 석 달 만에 2.3% 포인트 내려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한 것이다. 한국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1998년 -5.1%가 마지막이었다. 1953년 GDP 통계 편제 이후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한 해는 1980년(-1.6%)을 포함해 두 번이다.
이 부총재보는 “올해 상반기 중 세계경제는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봉쇄조치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크게 위축되는 모습”이라며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선진국의 경기침체가 두드러진 가운데 신흥국도 최근 코로나 확진자 수의 급격한 증가와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종전 0.75%에서 0.50%로 인하했다. 3월 17일 임시 회의에서 0.50% 포인트(1.25%→0.75%) 낮추며 사상 첫 0%대 금리 시대를 연 지 두 달 만의 추가 인하다. 지난달 9일 정례 회의에서는 코로나19가 2분기부터 진정되는 상황을 가정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4월 금통위 이후 한 달여를 지나고 보니 글로벌 코로나19의 전개 양상이 그때 봤던 것보다는 아무래도 진정 시점이 지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낙관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국내 경제성장률이 소폭의 플러스를 보일 수 있겠다”며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마이너스 폭이 비교적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사태 진정에 따른 경제활동 재개로 전 세계 경기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보면서도 그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내다봤다.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최근 남미를 비롯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총재보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큰 폭의 마이너스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에 따라 세계교역도 서비스 교역이 크게 위축되고 상품 교역도 감소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을 -3.0%로 예상하면서 선진국은 더 큰 폭인 -6.1%까지 내려갈 것으로 진단했다.
재점화 양상을 보이는 미·중 무역분쟁도 한국 경제 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총재는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여서 투자와 교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특히 우리 수출 회복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내년 예상 성장률(3.1%)에 대해 “숫자로 보면 높은 성장률인데 너무 빠른 하락에 따른 반등 의미가 크다”며 “올해 -0.2%인 것을 감안하고 3.1%를 더하면 아주 빠르다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