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을 올린 ‘김종인(사진) 비상대책위원회’가 9년 전 ‘박근혜 비대위’의 성공을 재연할 수 있을까. 9년 전 성공했던 박근혜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앞에는 당시와 유사한 과제인 정강·정책 수정, 당명 변경 등이 놓여 있다. 일각에서는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상황은 엄연히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종인 비대위는 정강·정책 수정과 당명 변경을 쇄신 과제로 내세웠다. 또 4·15 총선에서 낙선한 김재섭 김병민 전 후보 등 청년 비대위원들을 전면에 배치한 상황이다.
2011년 말 출범한 한나라당(통합당 전신) 박근혜 비대위도 정강·정책 수정, 당명 변경, 청년 전진 배치 등으로 당 쇄신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같은 해 하반기 재보궐 선거 패배,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논란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줄사퇴로 지도부가 와해됐고 박근혜 비대위가 출범했다. 이후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이어진 2012년 19대 총선 및 대선에서 승리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보수정당 비대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공한 비대위로 꼽힌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으로 경제민주화 등이 추가된 새로운 정강·정책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보수정당에 사회주의 색채가 강한 경제민주화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당내 반발에도 경제민주화는 정강·정책에 명시됐다. 김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이슈 등을 선점한 것이 새누리당 총선 및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9년 전 박근혜 비대위에서 다뤘던 과제들을 또다시 다루고 있는 셈이다. 그는 지난 27일 “과거 (내가 주장한) 경제민주화 같은 새로운 것을 내놓더라도 놀라지 말라”며 “당의 정강·정책을 시대정신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보다 혁신적인 내용 제시와 당 정강·정책의 대대적 변화를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 위원장은 비대위 공식 출범 전부터 당명 변경도 시사한 바 있다.
다만 김 위원장이 유사한 과제들의 해결을 내세웠지만 이번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중도층을 껴안으려는 김 위원장의 쇄신안과 당내 기존 보수 색채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또 김 위원장이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박 전 대통령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박근혜 비대위 당시 김 위원장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일했던 이상돈 민생당 의원은 2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비대위는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 전 대통령이 있었기에 성공한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이 중도 쪽으로 가도 기존 보수층은 따라올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4·15 총선 참패 후 조용하게 있는 황교안 전 대표 등 보수 색채가 강한 쪽에서 김 위원장의 쇄신 기치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박근혜 비대위에 참여했던 김세연 통합당 의원은 “김 위원장이 내놓을 정책에 대한 일부 반대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비대위 체제 동안엔 당내에서 강한 저항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살림살이를 맡을 사무총장엔 김선동 통합당 의원이 내정됐다. 재선인 김 의원은 4·15 총선에서는 낙선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