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을 깨부수자 … 피케티가 던진 닻

입력 2020-05-28 20:32 수정 2020-05-28 21:56
토마 피케티의 신작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이른바 ‘소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불평등을 정당화시켜왔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피케티는 경제학과 사회과학을 넘나들면서 양극화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사진은 케냐 시민들이 지난 1월 불평등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 나이로비에서 벌인 거리 행진. AP뉴시스

구글 검색창에 ‘r>g’이라는 부등식을 입력해보자.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 중엔 티셔츠를 촬영한 사진도 있을 것이다. 요령부득의 암구호처럼 여겨지는 저 부등식은 어쩌다 티셔츠로까지 만들어졌을까. 그 이유를 알려면 우선 ‘r>g’의 뜻부터 알아야 한다. r은 자본의 수익률을, g는 경제 성장률을 각각 의미한다. 이 말은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 생산 수익의 증가 속도를 추월했음을 뜻한다. 즉, ‘r>g’은 갈수록 기우뚱해지는 지구촌 불평등 실태와, 흙수저가 금수저를 추월하기 힘들어진 세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다.

‘r>g’를 세상에 퍼뜨린 주인공은 바로 프랑스 학자 토마 피케티(49)다. 그는 2013년 ‘21세기 자본’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21세기 자본’에 담긴 주장들로 인해 세계 곳곳에선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졌고 분배 이슈는 경제학계의 최고 테마가 되었다. 피케티는 2010년대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많은 이들이 기다렸을 피케티의 신작이다. 1300쪽에 달하는 묵직한 벽돌책으로 피케티의 박람강기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다. 띠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지금까지 내가 쓴 책 중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이데올로기가 만든 불평등의 역사

‘21세기 자본’이 출간된 이후 피케티는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서점가엔 ‘피케티 신드롬’을 다룬 책이 쏟아졌는데, 그중 하나가 폴 크루그먼 등 내로라하는 학자 25명의 논평을 엮은 ‘애프터 피케티’(2017)였다. 뾰족한 이야기가 간단없이 등장하는 이 책의 말미엔 피케티의 글이 등장한다. “불평등의 동학을 이해하려면 부와 소득의 분배에 관한 표상 및 신념 체계의 분석이 필수적이라고 확신한다. 이 부분은 신념 체계와 불평등 체제 간의 가장 중요한 상호 작용을 볼 수 있어 향후에 더욱 광범위하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피케티가 저 글에서 언급한 “신념 체계와 불평등 체제 간의 가장 중요한 상호 작용”을 다루고 있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사회·정치적인 규칙, 바꿔 말하자면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이데올로기 문제를 파고든 작품이 ‘자본과 이데올로기’다.

이야기는 장구한 인류의 근현대사를 개괄하면서 시작된다. 피케티는 전사(귀족) 사제(지식인) 제3신분(노동자와 농민)으로 구성됐던 신분 사회가 프랑스혁명으로 뒤흔들리고, 그러면서 차츰 사적 소유가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자리 잡는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경제학자의 책이라고 하면 계량적 연구에만 함몰된 무언가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책은 다르다. 피케티는 역사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사방치기 하듯 넘나들면서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경제학자 이정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국어판 해제에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은 문사철의 위력”이라고 적었는데, 독자들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책은 모두 17개 챕터로 구성됐다. 가장 인상적인 주장은 마지막 챕터에 등장한다. 피케티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세제로 ①연간 누진 소유세 ②누진 상속세 ③누진 소득세를 꼽는다. 여기서 ①번과 ②번을 통해 거둬들이는 금액은 국민소득의 5% 수준. 이 돈을 피케티는 25세가 되는 청년들에게 지급하자고 제안한다. 그 액수는 성인 평균자산의 약 60%다. 서유럽 국가나 미국, 일본을 기준으로 한다면 1인당 약 12만 유로(약 1억6000만원)에 달한다. 피케티는 청년들이 이 돈으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다고, ‘r>g’의 세계를 결딴내는 “이 체계야말로 모두를 위한 상속” 시스템이라고 주장한다.

양극화 문제 처방전으로 제시하는 참여사회주의도 눈여겨봄 직하다. 참여사회주의는 쉽게 말하면 노동자가 기업 의결권을 나눠 갖는 식으로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토록 하는 시스템이다. 피케티는 참여사회주의 모델이 안착하면 “자본주의의 현실적 극복에 해당하는 소유 체제”가 만들어질 것으로 내다본다. 정치 문제에서도 참여와 연대에서 돌파구를 찾는다. 피케티가 제안하는 “민주적 평등 바우처” 제도를 보자. 이 제도가 시행되면 시민들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 운동을 선택해 연간 5유로 상당의 바우처를 사용하게 된다. 정치판이 부자들 손에만 휘둘리는 일을 막자는 취지다. 피케티는 “민주적 평등 바우처의 정신은 재력과 무관하게 모든 시민을 정치 운동과 단체의 혁신에 지속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더욱 역동적이고 참여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피케티 신드롬’ 재연될까

책에는 밑줄을 긋게 만드는 인상적인 이야기가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피케티는 진보적 성향을 띠는 고학력자, 그러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강남 좌파’의 출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납세 의무를 회피하려는 이들을 차단하기 위해 세계적 차원의 금융등기부를 만들자거나, 지구촌을 연방제 형태로 재편하자는 제안도 주목할 만하다.

그의 주장들은 너무 급진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피케티의 제안은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앵커링 효과’의 연장선에 있다고. 앵커링 효과는 배가 닻(anchor)을 내리면, 배는 닻과 배를 연결한 로프 범위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피케티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능한 멀리까지 닻을 던져보자는 제안일 수도 있을 성싶다. 그는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불평등이 사회를 다른 형태로 바꿔놓는 힘이 되곤 했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빈부 격차로 인해 세계의 틀이 크게 바뀌는 시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것이고, 어쩌면 그때 이 책은 하나의 예언서로 여겨지리라.

미리 말하자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수월하게 읽히는 책이 절대 아니다.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다. 얼마간 덜컹거리는 듯한, 그래서 가독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문장도 옥에 티다.

한데 따지고 보면 ‘21세기 자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사람이 구입했지만 완독한 이는 극소수였다. 하지만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돼버렸다고 해서 피케티의 책이 지닌 가치를 깎아내릴 순 없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전작이 그랬듯 앞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게 불문가지다. 어쩌면 많은 독자가 그의 책을 기웃거린다는 사실 자체가 난망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희망의 기미일 수도 있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