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실종된 세상 향한 광야의 외침

입력 2020-05-29 00:04 수정 2020-05-29 00:29
차별·배제·소외·혐오·낙인찍기·집단 괴롭힘·갑질 같은 어두운 용어는 분명 창세기 3장 이후부터 태어났을 것입니다. 일그러진 세상엔 언제나 마성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웁니다. 타락한 인간성 속에 깊게 자리한 욕망은 어느 순간 탄력을 받아 추한 권력이 됩니다. 절제 없는 권력은 무소불위의 도구가 돼 타인을 자기 입맛에 맞춰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가학적 쾌감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변태적 양태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어두운 용어는 사람들 사이와 사회와 국가 속에, 국가와 국가 간이나 종교 간에, 인종과 성별 사이에서 몹쓸 상태로 실재합니다. 슬프게도 이들로 인한 고통은 언제나 약자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정의가 실종된 일그러진 세상 풍경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정의는 언제나 약자를 위해 활동합니다. 정의란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구약성경 전통은 네 부류의 사람이 쉬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와 과부, 고아와 외국인 체류자가 그렇습니다. 모두 기득권에 의해 쉽사리 착취와 혐오, 차별과 소외의 대상이 되는 사회적 약자입니다.

한국사회는 차치하고서라도, 한국교회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특히 보수 성향의 교회와 교단이 위의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이는 사회에 관한 것이지, 교회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과 속’이란 이분법적 사고가 공고합니다. 교회는 성수 주일과 하나님 말씀 선포, 경건 및 헌금 생활 등 신앙적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권이나 사회정의는 세상적 문제이므로 교회와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좁은 신앙관입니까.

이 책은 이런 생각을 지닌 견고한 교단과 지도자들에게 외치는 소리입니다. 저자들은 보수 교단 개혁에 뜻을 같이하는 소장파 학자입니다. 이들은 비블로스성경인문학연구소(소장 박유미 박사)를 열어 성경을 연구하며, 그 연구를 토대로 한국교회와 신학교에 광야의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 첫 결과물이 이 책입니다.

이들의 외침은 변방의 광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입니다. 소수의 목소리지만 “제발 우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라고 끈질기게 호소합니다. 집단지성의 힘을 믿으며 성경과 역사, 사회와 시대를 읽습니다. 자세한 성경연구로 성경 속에 숨겨진 차별과 압제의 경우를 정교하게 끄집어내 깊이 살펴보고, 그 본문의 현대적 함의를 펼쳐 보입니다.

책은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선 ‘차별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란 제하에 학자 4명의 논문을 실었습니다. 2부에선 ‘차별에 대한 성서학적 접근’이란 제목 아래 학자의 6명의 글을 담았습니다. 10명의 학자 각자의 관심사와 전공에 따라 차별을 논하는 논문집입니다. 문체와 전개 방식, 글의 깊이가 다 같을 순 없지만, 학문적 연구이기에 독자들은 공부하는 자세로 한 글씩 소화해야 합니다. 다 읽고 나면 논문들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사회와 교회에서 일어나는 각종 차별을 발견해 그것이 온당치 못함을 밝히고, 새로운 대안을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첫걸음입니다.

류호준 목사 (전 백석대 신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