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기도, 끊고 가기도 애매한… 통합당의 ‘보수 유튜버 딜레마’

입력 2020-05-30 04:05

총선 패배의 상실감을 표출하는 창구냐, 병든 우파의 결집소냐. 보수 유튜브 채널을 바라보는 미래통합당의 인식은 양분돼 있다. ‘든든한 뒷배’인 줄 알았던 보수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4 15 총선 결과 과대 대표됐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유튜버와의 관계 설정을 다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분출한다. 중도층을 안고 가려면 과감하게 보수 유튜브와 이별을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유튜브의 대표 주자는 구독자 123만명의 ‘신의한수’다. 이와 함께 ‘펜앤드마이크’(64만5000명), ‘가로세로연구소’(60만1000명), ‘이봉규TV’(58만명), ‘고성국TV’(53만2000명), ‘공병호TV’(52만4000명) 등도 주요 채널로 꼽힌다. 이들 유튜브 채널에는 현역 의원이 직접 출연한 인터뷰도 상당수 올라와 있다. 통합당 공식 행사뿐 아니라 총선 당시 통합당 지역구 의원들의 선거 홍보에도 이들 유튜브의 라이브 방송이 활용됐다. 지난해 통합당이 장외 집회에 몰두할 때에는 이들 채널이 서울 광화문 집회 모습을 생중계해 50만회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각별했던 통합당과 보수 유튜버

황교안 전 대표 체제에서는 통합당과 보수 유튜버 사이가 어느 때보다 각별했다. 지난해 황 전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할 때 보수 유튜버들은 24시간 자리를 지켰고, 한밤중 황 전 대표가 탈진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장면까지 중계했다. 당 공식 회의나 행사에서 유튜버들은 출입기자와 같이 취재가 허용됐다. 황 전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유튜버들에게 입법보조원 자격을 줘 국회 출입을 자유롭게 하자’는 제안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부 통합당 의원들은 자신의 의정 홍보 활동에 유튜브를 적극 활용한다. 총선 때 지역구에 와서 선거운동을 도와준 유튜버들에게 신세를 갚는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하기도 한다. 한 통합당 관계자는 29일 “총선 때 지방까지 찾아와 촬영하고 유튜브 홍보 활동을 대신해준 이들을 선거가 끝났다고 외면하기는 어렵다”며 “예의 차원에서 인터뷰에 응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통합당의 핵심 지지층을 구성하는 50대 이상이 유튜브를 활발하게 이용한다는 사실은 통계로 드러났다. 앱 분석 업체 와이즈앱이 지난해 8월 한 달간 국내 사용자의 유튜브 앱 사용 시간을 분석한 결과, 50대 이상이 총 122억분으로 가장 길었다. 전체 유튜브 사용 시간 460억분 중 26%를 50대 이상이 차지한 것이다. 50대 이상이 유튜브 시청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보수 정당은 유튜브를 주요 홍보 수단으로 활용했다.


언론사가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유튜브는 공직선거법 규제를 적용받지 않아 자유로운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공정보도 의무나 홍보 제한 규정, 연설이나 대담, 토론회 규정에서도 자유롭다. 이 때문에 선거철에는 후보자들과 유튜브의 공생 관계가 형성된다. 평소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기성 언론의 후보자 인터뷰보다 합법적으로 편파적인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유튜브가 지지층 결집에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잘못된 주장에 확실히 선 긋자”

그러나 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들면서 보수 유튜브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대 국회 임기를 마친 김무성 전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극우 유튜버들은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어먹기 위해 자극적인 말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참았는데 이제는 보수 유튜버와 싸우려 한다”고 말했다. 김세연 전 의원도 “실제로 좀 그릇된 신념이 (보수 진영에) 너무 뿌리 깊게 박히는 과정에서 (보수 유튜브에) 그 역할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런 부분들이 사회적인 각성 과정을 거치면서 자정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보수의 커뮤니케이션이 상당히 왜곡돼 있다. 보수 혁신에 실패해서 그들(보수 유튜버)에게 의존하고 여론 헤게모니(주도권)를 넘겨줬다. 그들과 적절히 싸워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설득해야 했는데 못했다”고 꼬집었다.

구독자가 60만명을 넘는 ‘펜앤드마이크’와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페이지. 둘 다 보수 채널이지만 총선 조작론에 대한 입장은 다르다. 가로세로연구소는 조작론을 주도한 반면, 펜앤드마이크는 비판적인 입장이다. 유튜브 캡처

민경욱 전 의원이 주장한 부정선거 의혹은 보수 유튜버의 분열까지 불러왔다. 지지층 균열 양상이 유튜브로 번진 모양새다. 통합당이 앞으로 유튜버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정치권력’이 된 유튜버의 잘못된 주장에는 확실하게 선을 긋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통합당 의원은 “보수 성향 유튜브도 정치인들이 주도적으로 이용해야지 부화뇌동해서는 안 된다. 틀린 건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통합당 의원도 “선거 부정은 이미 시효가 지난 일이다. 더 이상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우리에게 득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공당이 유튜브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유튜브는 각자의 주장이 여과 없이 방송되기 때문에 정당이 이에 휘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극렬 지지층만 보고 정치할 것이 아니라면 보수든 진보든 중도 확장에는 유튜브 정치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통합당은 보수 유튜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이를 명시적으로 선언해야만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극단적 주장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제대로 선을 긋는 모습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

다만 과감한 결별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통합당으로선 딜레마다. 보수 유튜브의 주 시청자이면서 당의 열성 지지 세력인 노년층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통합당도 보수 유튜버와의 관계 설정에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