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 정당이 1호 법안을 신중히 고르고 있다. 전반기 원내 운영 전략을 엿볼 수 있기 때문에 개원 때마다 1호 법안은 주목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어떤 법안을 처음으로 선보이느냐에 따라 특정 정당이 여론을 선점할 수도, 초반 주도권을 뺏길 수도 있다. 177석 거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일찍이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법안으로 확정하고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대안정당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26일 ‘일하는 국회 추진단’ 전체회의를 열고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당은 개원 전부터 일하는 국회법을 1호 법안으로 확정하고 추진단을 가동하고 있다. 김태년 원내대표도 원내대표 경선에서 ‘일꾼’을 내세워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동물·식물국회,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은 20대 국회의 실패를 재연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또 거대 의석을 바탕으로 문재인정부 후반기 각종 개혁 입법을 뒷받침해 정권을 재창출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래통합당은 ‘야당 힘 빼기’를 위한 민주당의 사전 정지작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일하는 국회법 안에 담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를 문제 삼는 중이다. 무분별한 법 개정을 막는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통합당은 1호 법안으로 경제 관련 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안정당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민부담 경감 경제 활성화 법안, 사회안전망 확충 법안 등이 거론된다. 통합당은 총선 공약으로 주52시간제 보완 입법, 법인세 및 부동산 보유세 인하 등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기본소득을 계속 언급하는 만큼 기본소득제를 내세워 파격적인 노선 전환을 시도할 수도 있다.
지도부 대거 교체와 함께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킨 정의당도 1호 법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당초 차별금지법을 1호 법안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최근의 잇따른 산업재해 사고 등을 고려해 산재 관련 법안과 저울질하고 있다.
이날 정의당은 5대 우선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차별금지법, 그린뉴딜 추진 특별법 등을 발표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고 노회찬 의원이 세월호 4주기를 맞아 발의했다가 20대 국회에서 폐기됐다. 지난 19일 정의당은 정책·입법 간담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 개정 등 ‘전태일 3법’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의당 관계자는 “혁신위 활동기간이 8월 말까지여서 그 안에 신중히 검토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에서 3석을 얻는 데 그친 국민의당은 기본소득제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아니라 청년과 노인세대에게 선별적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으로서는 문재인정부 집권 4년 차에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일하는 국회를 내세운 것이고, 통합당은 문재인정부가 아픈 대목인 경제에서 대안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