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2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특경가법상 배임,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제일모직의 핵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서 벌어진 회계부정 사태를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삼성그룹이 진행해온 불법적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이라 본다. 이 부회장의 ‘최소비용 최대지배’를 위한 조직적 승계작업의 존재, 이 부회장이 승계 과정에서의 불법을 숨기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사실 등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 박영수특검의 수사를 거쳐 지난해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검찰은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건의 최종적인 결정자이자 최종적인 수혜자가 결국 이 부회장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부회장이 정권에 건넨 뇌물과 삼성그룹 내 지배력 강화를 위한 승계작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게 그간 검찰의 시각이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중심으로 벌어진 승계작업은 이미 특검 수사와 대법원 판결로 ‘큰 그림’이 복원돼 있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건은 이런 ‘큰 그림’ 속에서 부속처럼 튀어나온 불법이라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 부회장의 검찰 출석은 수사팀이 이 부회장에게 “최종 지시를 했느냐”는 마지막 질문만 남겨둔 상황임을 의미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입장을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오래 걸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의 검찰 출석은 국정농단 사태 당시인 2017년 2월 특검 소환으로부터 약 3년3개월 만이며, 2018년 11월 금융위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고발로부터는 1년6개월 만이다. 검찰 수사 착수 이후 삼성그룹 계열사 임직원 8명이 증거인멸과 관련해 구속됐다. 이 부회장 소환에 앞서서는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등 사장급 10여명이 검찰청 문턱을 넘었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기업가치를 고의로 낮추거나 부풀리는 불법이 동반됐다고 본다.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 부회장이 보유하지 않은 삼성물산 기업가치는 고의로 낮추고,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는 부풀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에 오래도록 관여해온 옛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수사 결과 삼성바이오가 자본잠식에 빠질 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내용의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도 확보됐다. 삼성바이오가 미국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해 보유했던 콜옵션 부채 1조8000억원을 일부러 재무제표에 반영하지 않은 일은 2018년 11월 밝혀졌었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을 우려해 비정상적 대안을 적극 모색했다”고 풀이했다. 이 회계처리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누구냐는 것이 검찰이 이 부회장을 향해 던지는 질문이다.
검찰의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사건 수사는 박영수특검 당시부터 펼쳐진 이 부회장 뇌물 수사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겁박에 따라 뇌물을 건넸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뇌물의 대가를 규명하는 작업으로서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검찰 수사는 이 부회장이 과연 피해자인지, 정권에 건넨 뇌물의 대가는 얼마인지 따져 묻는 작업”이라고 관측했다.
이 같은 해석은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판단 때문이기도 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8월 “승계작업을 인정할 수 없고, 전 대통령이 승계작업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던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판결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는 부정한 청탁의 대상인 승계작업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됐는지, 청탁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규명할 부분이 남았다는 판단으로도 해석됐다.
이 부회장은 법정에서 삼성 승계작업에 대해 “기업의 일반 현안과 다르지 않다” “가벌성이 거의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검찰은 그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에 대해서도 “최종 결정은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다만 검찰은 “자료를 갖고 오래 준비를 해 왔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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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구승은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