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도로, 신앙의 양심으로 도청 지하실 무기고를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하면 (TNT 폭발로) 상상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나갈 수 있겠는가. 광주시민과 계엄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끝까지 무기고를 지키는 것이 신학도인 주의 종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40년 전인 1980년 5월 26일 오전 11시 광주 전남도청 정문 앞에서 문용동(1952~80) 전도사가 누나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인 이명섭 윤상현 전도사에게 남긴 말이다. 계엄군 진입 하루 전 도청에서 나올 것을 권유한 지인들에게 문 전도사가 내놓은 사실상의 유언이다. 문 전도사는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 당시 양쪽 가슴 및 오른손에 3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도청 현장의 마지막 희생자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는 26일 광주 호남신학대에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문용동 전도사 순직 기념예배를 드렸다. 김태영 예장통합 총회장이 누가복음 19장 32~40절 말씀을 통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김 총회장은 “침묵하면 하나님은 돌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그 진실이 드러나게 하신다”면서 “의인의 죽음이 묻히지 않도록 돌들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도사는 80년 당시 장로회호남신학교(현 호남신대)에 적을 두고 상무대교회 전도사로 사역했다. 5월 18일 교회에서 집으로 가다가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에 붙들려 구타당한 어르신을 업고 병원으로 옮기며 항쟁에 참여한다. 부상자 구호와 헌혈운동을 돕다가 계엄군이 잠시 물러난 21일 이후엔 도청 지하 무기고의 TNT 등 폭발물 관리를 자원했다.
문 전도사는 5·18 직전 전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야유회 설교에서 “교회는 그리고 성도는 저 높은 곳에서만 살아서는 안 된다”면서 “교회 본연의 목적은 이웃을 위함, 세상을 향한 교회이다. 즉 선교인 것이다”고 말했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의 마지막 설교다.
예장통합 인권선교정책협의회는 이날 ‘5·18 민주화운동과 한국교회’ 세미나도 개최했다.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5·18과 한국사회’, 최상도 호남신대 교수가 ‘5·18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발표했다. 문용동전도사기념사업회 총무 도주명 목사는 “문 전도사의 모습을 공동의 신앙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면서 “이웃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