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자회사 설립’ 대기업·해운업계 충돌 배경엔 20년 역사 ‘2자 對 3자 물류’ 갈등 있다

입력 2020-05-26 04:05
지난 19일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포스코 물류자회사 설립 반대 해양산업계 합동 기자회견’에서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최두영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포스코의 ‘물류 자회사 설립’에 해운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선 대기업 물류 자회사와 해운회사의 20년간 축적돼온 갈등이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운업계는 지난 20년간 우후죽순 생겨난 대기업의 자회사에 먹거리를 빼앗겼다는 위기의식이 강하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25일 “2000년 이전에는 해운회사가 대기업과 직접 계약해 물량을 운반했다”며 “그러나 기업은 물류 경로를 효율화하고 해운사가 가져가는 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물류 자회사를 만들어 업무 계약을 맡기거나 직접 운반하게 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대기업 물류 자회사를 ‘2자 물류’, 기존 해운회사를 ‘3자 물류’라고 부른다. 국내 2자 물류 회사에는 현대글로비스, 삼성SDS, 롯데로지스틱스 등이 있다.

2000년 1조3000억원에 그쳤던 대기업 물류 자회사 8곳의 매출은 2016년 32조5000억원에 달해 24배 급성장했다. 반면 해운업계의 매출은 2010년을 기점으로 꺾인 후 계속 하락세다. 김인현 고려대 해상법연구센터장은 “2자 물류 회사가 대기업과 해운회사 사이에 끼어들어 계약을 체결하고 보수를 취하는 과정에서 해운회사는 직접 계약을 체결할 때보다 연간 3조원의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계열사의 물류 계약 업무를 통합하는 것뿐’이라는 포스코의 해명에도 해운업계가 운임료 파이 축소를 우려하는 이유다.

2자 물류의 성장은 ‘제3자 물류 보호’를 추구하는 정부의 정책 기조에도 어긋난다는 게 해운업계의 주장이다. 물류정책기본법엔 제3자 물류 촉진 정책을 시행한다는 원칙이 제시돼 있다. 김 센터장은 “2자 물류 회사 대다수가 막대한 선박 구매·관리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위해 선박 없이 계약 업무만 담당하는 ‘물류주선업’으로 시작한다”며 “반면 3자 물류 회사는 선박을 보유하기 때문에 국내 수출업을 위해 기간산업으로서 보호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들은 방대한 물류비용을 줄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물류 자회사 설립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권오경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3자 물류업 발전이 더디고 해운회사끼리 담합도 많다”며 “대기업 입장에선 자체적으로 빅데이터 등을 개발해 운반 경로를 합치거나 선박 대기 시간을 줄여 비용을 줄이고자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2자·3자 물류 간 갈등이 폭발하기 직전인 만큼 포스코 등 대기업이 절감된 물류비용을 해운업계와 나누는 방안을 공유하는 등 업계를 적극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강 교수는 “국민연금이 대주주인 포스코는 공공성이 강하기 때문에 기간산업에 피해를 주지 않을 거라는 강한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김 센터장은 “물류정책법상 규제나 보호를 받고 있지 않는 무(無)선박 물류 회사들에 법적 지위를 설정해 대기업이 일감을 몰아주게 하지 못하는 등 상생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