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그동안 작은 경제 규모와 저성장·고령화를 고려해 ‘나랏빚’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이상 늘리지 않았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이런 불문율은 사실상 무너지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시재정을 강조한 만큼 현 정부 집권 내 국가채무비율이 50%에 육박하는 등 전례 없는 부채의 시대를 맞이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25일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1, 2차 추경을 뛰어넘는 3차 추경안을 준비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 대응으로 11조7000억원의 1차 추경과 14조3000억원 재난지원금 지급(2차 추경)을 시행했다. 대통령의 언급을 고려하면 내달 초 발표되는 3차 추경은 최소 30조원 이상 될 전망이다.
1~2차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총 819조원으로 증가했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1.4%로 올라갔다. 30조원 상당의 3차 추경이 실행된다면 국가채무는 849조원, 국가채무비율은 42.9%까지 뛴다.
산술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국가채무비율 110%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부채 비중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통령이 적극 재정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또 돈을 투입해 경제가 살아나면 자연스럽게 재정건전성도 회복할 수 있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실제로 국가채무비율이 이미 100%가 넘는 미국(106.9%) 일본(224.1%) 프랑스(122.5%) 등은 GDP의 최대 10%에 달하는 빚을 추가로 지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처럼 빚을 늘리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이들 국가는 경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큰 데다 이른바 기축통화국 지위를 이용해 중앙은행이 나랏빚을 사들여 재정적자를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한 급변 사태 및 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재정건전성은 중요하다.
여기에 성장률 저하도 문제다. 정부는 국가채무비율 계산 시 기준이 되는 경상 성장률(실질 성장률+물가 변동분)을 올해 3.4%로 예상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실질 성장률이 0%대 또는 마이너스까지 추락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내달 초 경상 성장률이 대폭 하향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상 성장률을 0.6%로 제시했다.
경상 성장률이 0.6%까지 추락하면 가만히 있어도 국가채무비율은 더 급증한다. 1~2차 추경까지 국가채무비율은 41.4%가 아니라 42.5%로 바뀐다. 3차 추경 시 국가채무비율은 42.9%가 아니라 44.1%로 올라간다.
기재부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2009년(29.8%)에서 2018년(35.9%)까지 9년간 6% 포인트 정도 올랐다. 하지만 1~3차 추경으로 인해 올해 국가채무비율이 44%대로 오른다면 불과 2년 새 8% 포인트 이상 뛰게 된다. 부채비율 증가세가 너무 가팔라지는 것이다. 코로나19 이전 정부의 국가채무비율 계획은 올해 39.8%, 2022년 44.2%인데 현 추세대로라면 현 정부 집권 말 2022년에는 50% 전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KDI는 지난 20일 “급격한 재정 적자 증가는 재정건전성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재정 수입 보안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월 “부채비율이 46%까지 증가할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