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시 재정’이라도 다 쓸 순 없어… 재정준칙 필요하다

입력 2020-05-26 04:02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주재한 ‘2020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시(戰時) 재정을 편성한다는 각오로 정부의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모두발언 등에서 뚜렷이 드러나는 ‘단기주의(short-termism)’는 우려할 만하다. 청와대는 한꺼번에 모든 재정을 투입해 경제의 V자 회복에 총력전을 펴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문가가 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재정은 사태 이후 상황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보다 긴 호흡에서 재정 운용 계획을 짜야 한다.

국민은 이미 지난 3년간 문정부가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정책이 실패했음에도 정책 전환은 하지 않고 재정 투입을 늘려 온 것을 봤다. 이런 맥락에서도 문 대통령의 ‘재정 역량 총동원’이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한국판 뉴딜을 강조했다.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도 필요하겠지만 이 또한 규제 완화나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같은 제도 개혁과 함께 가야 한다. 재정을 지출하더라도 기업 경쟁력 제고와 위기 이후 회복력 강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대통령 임기가 끝남과 동시에 제자리로 돌아가버린 노무현정부 때의 ‘비전 2030’이나 박근혜정부 때의 창조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이 “국가 재정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서도 매우 건전한 편”이라고 했지만 안심할 게 아니다. 재정 비관론자들의 우려는 현재가 아니라 2030년 이후다.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급격히 늘어나지만 인구는 감소해 국가 채무가 폭증하는 상황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가 초점이다. 지속 가능한 재정을 위해서는 10년 단위 국가 채무 비율의 상한을 정하는 등 재정준칙 제정이 필수적이다. 말뿐인 약속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여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구속력을 갖는 형식으로 준칙이 만들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