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하면 안 돼, 시합 때 그대로 나온다!”
한국 남자 테니스 간판 권순우(23·CJ 후원)에게 볼을 넘기며, 임규태(39) 전담코치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공개 훈련을 진행한 권순우는 임 코치가 넘기는 볼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그의 라켓을 떠난 볼은 빠른 속도로 네트를 넘어 코트 구석 구석을 강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약 두 달 간 실전을 치르지 못한 상태. 하지만 권순우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고, 하체에 힘이 더 붙은 듯 발걸음도 가벼웠다.
권순우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센터 코트에서 공개 훈련을 진행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인생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왕(王)자가 (대회가 중단된) 1달 반 사이에 배에 생겼다”며 “훈련을 많이 해서 투어 대회가 시작하면 초반에 타이틀 하나 정도는 따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권순우는 지난해 본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게이오챌린저대회·서울오픈챌린저대회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일궈냈고, 멕시코 오픈에서 투어 대회 첫 8강에 올랐다. 윔블던과 US오픈에서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239위였던 세계랭킹은 88위까지 상승했다.
올해 초엔 분위기가 더 좋았다. 지난 2월 인도 푸네 오픈부터 멕시코 아카풀코 오픈까지 4주 연속 투어 대회 단식 8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올 시즌 ‘지난해보다 랭킹 10위만 더 올리자’는 목표를 세웠던 권순우는 단 2달 만에 자신의 최고 랭킹인 69위까지 경험했다.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 같은 톱 랭커들과 맞대결한 경험도 권순우에겐 자산이다. 권순우는 멕시코오픈 8강에서 나달과 만나 0대 2로 졌다. 권순우는 “나달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공을 굉장히 잘 보내도 뛰어가서 베이스라인 런닝샷을 잘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코로나19로 투어 대회가 연기되며 권순우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3월 초부터 약 2달 동안 ‘강제 휴식’을 해야 했다. 권순우는 “(대회 연기로) 라켓이 울고 있겠다”는 질문에 “저도 같이 울고 있다”며 답답했던 마음을 드러냈다.
권순우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기술적인 부분보단 체력·근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휴식기에도 훈련을 이어갔다. 5세트 강행군이 이어지는 메이저대회 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에 한계를 느껴서다. 주 4~5회 매일 1시간 이상 햄스트링·허벅지·종아리·코어 부분 강화 훈련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한 서브와 백핸드 슬라이스 훈련을 겸했다. 근육이 증가하면서 69㎏이었던 몸무게는 76㎏까지 불어났다.
임 전담코치는 “순우가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했다”며 “허벅지가 단단해지고 엉덩이도 커졌다”고 귀띔했다. 체력 훈련을 지도한 박재영 트레이너도 “권순우는 1분만 쉬어도 다시 동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력이 좋다”며 “처음엔 마른 느낌이었는데 본인도 ‘이제 운동선수 같다’고 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오는 8월부터는 코로나19 탓에 중단됐던 투어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권순우는 이에 맞춰 6월부터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한 뒤, 7월엔 미국에서 적응 훈련을 할 계획이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성적도 권순우의 목표 중 하나다. 권순우는 “올해 목표는 랭킹 50위 안에 드는 것”이라며 “내년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고, 장기적으론 100위 안에 꾸준히 들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