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배에 王자… 투어 시작 땐 초반 타이틀 따낼 자신”

입력 2020-05-26 04:06
테니스 남자 단식 세계랭킹 70위 권순우가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센터 코트에서 가진 공개훈련 중 호쾌한 샷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미스하면 안 돼, 시합 때 그대로 나온다!”

한국 남자 테니스 간판 권순우(23·CJ 후원)에게 볼을 넘기며, 임규태(39) 전담코치는 연신 소리를 질렀다. 오랜만에 공개 훈련을 진행한 권순우는 임 코치가 넘기는 볼 하나 하나에 집중했다. 그의 라켓을 떠난 볼은 빠른 속도로 네트를 넘어 코트 구석 구석을 강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탓에 약 두 달 간 실전을 치르지 못한 상태. 하지만 권순우의 얼굴엔 생기가 넘쳤고, 하체에 힘이 더 붙은 듯 발걸음도 가벼웠다.

권순우는 25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 센터 코트에서 공개 훈련을 진행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인생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던 왕(王)자가 (대회가 중단된) 1달 반 사이에 배에 생겼다”며 “훈련을 많이 해서 투어 대회가 시작하면 초반에 타이틀 하나 정도는 따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권순우는 지난해 본인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게이오챌린저대회·서울오픈챌린저대회에서 두 번의 우승을 일궈냈고, 멕시코 오픈에서 투어 대회 첫 8강에 올랐다. 윔블던과 US오픈에서 메이저대회 본선 무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239위였던 세계랭킹은 88위까지 상승했다.

올해 초엔 분위기가 더 좋았다. 지난 2월 인도 푸네 오픈부터 멕시코 아카풀코 오픈까지 4주 연속 투어 대회 단식 8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올 시즌 ‘지난해보다 랭킹 10위만 더 올리자’는 목표를 세웠던 권순우는 단 2달 만에 자신의 최고 랭킹인 69위까지 경험했다.

라파엘 나달(2위·스페인) 같은 톱 랭커들과 맞대결한 경험도 권순우에겐 자산이다. 권순우는 멕시코오픈 8강에서 나달과 만나 0대 2로 졌다. 권순우는 “나달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인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공을 굉장히 잘 보내도 뛰어가서 베이스라인 런닝샷을 잘 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코로나19로 투어 대회가 연기되며 권순우의 상승세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3월 초부터 약 2달 동안 ‘강제 휴식’을 해야 했다. 권순우는 “(대회 연기로) 라켓이 울고 있겠다”는 질문에 “저도 같이 울고 있다”며 답답했던 마음을 드러냈다.

기자회견을 가진 뒤 코트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권순우의 모습. 이동환 기자

권순우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기술적인 부분보단 체력·근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휴식기에도 훈련을 이어갔다. 5세트 강행군이 이어지는 메이저대회 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에 한계를 느껴서다. 주 4~5회 매일 1시간 이상 햄스트링·허벅지·종아리·코어 부분 강화 훈련이 집중적으로 이어졌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부족한 서브와 백핸드 슬라이스 훈련을 겸했다. 근육이 증가하면서 69㎏이었던 몸무게는 76㎏까지 불어났다.

임 전담코치는 “순우가 힘들어하면서도 열심히 했다”며 “허벅지가 단단해지고 엉덩이도 커졌다”고 귀띔했다. 체력 훈련을 지도한 박재영 트레이너도 “권순우는 1분만 쉬어도 다시 동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력이 좋다”며 “처음엔 마른 느낌이었는데 본인도 ‘이제 운동선수 같다’고 할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오는 8월부터는 코로나19 탓에 중단됐던 투어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 권순우는 이에 맞춰 6월부터 제주도에서 전지훈련을 진행한 뒤, 7월엔 미국에서 적응 훈련을 할 계획이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 성적도 권순우의 목표 중 하나다. 권순우는 “올해 목표는 랭킹 50위 안에 드는 것”이라며 “내년엔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고, 장기적으론 100위 안에 꾸준히 들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