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 인정받아야

입력 2020-05-26 04:02

1995년 유엔에서 여성 참여를 증대시키기 위한 ‘베이징 행동강령’을 발표한 이후 여성의 기업 의사결정 참여에 대한 관심이 확대됐다. 그러나 98년 전체 노동력의 43%가 여성인 미국에서도 기업 고위 관리자 가운데 여성 비율은 5%를 채 넘지 못했다. 내가 처음 한국소비자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88년에도 관리자급 여성 직원이 전체 254명 중 4명에 불과했다. 나는 전문 분야에서 최고가 돼 일하고 싶은 열정으로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며 최선을 다해 왔다.

10년이 지난 98년 ‘제1차 여성정책기본계획(1998~2002)’이 마련되면서 여성 전문 인력의 사회 참여가 확대됐고,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그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여성팀장으로 승진됐다. 여성 관리자가 된 이후 정부·산업계·소비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고려한 해결 방안을 찾으려 노력했으며, 한발 앞선 정책 개선 방안도 제시하고자 했다. 대표적 사례로 2002년 실시한 ‘환경 중 항생제내성균 실태조사’ 사업은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는 슈퍼박테리아의 심각성을 수면 위로 끄집어냈다.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위해 국무총리실에 항생제내성균 태스크포스가 설치됐고 ‘국가 항생제 내성 안전관리 사업’이 착수됐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층 강화된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 제고 계획이 수립됐다. 고위공무원 여성 비율 10%, 공공기관 여성 임원 20% 등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여성 고위직 확대 정책이 시행됐다. 이 같은 정책 기조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으며,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8년 공공기관장에 부임하게 됐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각광받는 미래 환경 변화에 발맞춰 조화와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 운영으로 기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여성 후배들의 길을 넓히는 데 힘을 보태고자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전문성과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추면 성별에 상관없이 능력을 인정받는 사회적 발판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로 조직이 보다 유연해지고 창의적으로 변화돼 다양한 목소리가 국가 어젠다에 반영된다면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윤희 식품안전정보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