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안법 늦출 수 없다”… 홍콩 시위대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

입력 2020-05-25 04:01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움직임에 맞선 홍콩시민들의 시위가 24일 번화가 코즈웨이베이에서 열린 가운데 중무장한 경찰관들이 시위에 참여한 한 젊은 남성을 쓰러뜨린 뒤 제압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코로나19 속에서 홍콩 민주화 시위가 재개됐다. 이번엔 ‘송환법’(홍콩 범죄인 인도법)이 아니라 ‘보안법’(홍콩 국가보안법)이 문제다. 중국 정부는 홍콩 의회를 거치지 않고 오는 28일까지 열리는 전국인민대회(전인대)를 통해 홍콩 내 반역, 분리독립, 폭동·소요, 체제 전복 등의 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홍콩 국가보안법’을 직접 제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들도 홍콩 자치권에 대한 침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24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홍콩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 소고백화점 앞에서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여 홍콩 보안법과 ‘국가법(國歌法)’ 반대 시위를 벌였다. 홍콩 입법회는 오는 27일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모독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국가법 안건을 심의한다.

시위대는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天滅中共)’ 등의 팻말을 들고 ‘광복홍콩 시대혁명’ ‘홍콩인이여 복수하라’ ‘홍콩 독립’ 등의 구호를 외치며 완차이 지역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많은 시위 참여자가 2014년 민주화 시위인 ‘우산 혁명’의 상징인 우산을 쓰고 거리에 나섰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 조슈아 웡은 “내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게 되더라도 계속 싸울 것이고, 국제사회에 지지를 호소할 것”이라며 “싸워서 이 법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야당인 피플파워(人民力量)의 탐탁치 부주석 등 최소 120명이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경찰은 이날 시위에 대비해 8000여명을 시내 곳곳에 배치했다. 경찰 장갑차도 보였다. 경찰은 오후 1시30분쯤부터 최루스프레이와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에 나섰고, 물대포를 쏘기도 했다. 시위대도 벽돌을 집어던지는 등 격렬히 저항하면서 경찰 측에서 최소 4명의 부상자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의 반정부 시위대가 24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추진 움직임에 맞서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이들의 쫙 편 다섯 손가락은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 ‘5대 요구 사항’을 하나도 빼지 말고 이행하라는 의미다.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보안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이어졌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인 크리스 패튼은 더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이 홍콩을 배신했다. 영국은 홍콩을 위해 싸울 도덕적·경제적·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패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치인 186명은 “홍콩 보안법이 홍콩의 자치권과 법, 기본적인 자유를 포괄적으로 침해한다”고 비판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전날에는 영국과 호주, 캐나다 외무장관이 공동성명을 통해 “그런 법을 제정하는 것은 홍콩에 대해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일국양제 원칙을 명백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도 “홍콩의 자치권은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에서 열린 전인대 기자회견에서 “홍콩 급진 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폭력이 격화되고 외부 세력이 불법 개입해 중국의 국가안보와 일국양제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홍콩 보안법은 잠시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홍콩의 일은 중국 내정으로 어떤 외부 개입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사실상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다. 미국은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력히 비판하며 강행 시 홍콩의 경제·통상 분야 특별 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