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핑 때마다 달라진 발언… ‘그린 뉴딜·원격의료’ 정부내 혼선

입력 2020-05-25 04:05

“그린 뉴딜은 포스트 코로나 대응과제 차원에서 한국판 뉴딜과는 별도 트랙으로 추진되고 있다.”(5월 14일 3차 경제중대본회의)

“한국판 뉴딜에 그린 뉴딜을 포함하는 방안을 지금 검토 중이다.”(5월 20일 4차 경제중대본회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 방안을 총괄하는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중대본)의 대변인을 맡은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의 발언이 이처럼 일주일 사이에 미묘하게 달라졌다. 김 차관은 지난 14일 브리핑에서는 “그린 뉴딜이 디지털·비대면과 접목될 경우에는 한국판 뉴딜에 일부 포함될 수 있겠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린 뉴딜은 전반적으로 한국판 뉴딜과는 별도로 추진되는 점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6일 뒤 브리핑에서는 그린 뉴딜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평소 꼼꼼한 일처리로 정평이 난 김 차관이 브리핑에서 결이 다른 발언을 잇달아 내놓는 것은 그만큼 뉴딜에 대한 정부 입장이 회의 때마다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원격의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달 29일 첫 경제중대본 브리핑에서 김 차관은 “이번에 비대면 진료나 원격의료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과거보다 논의의 차원이 달라졌기 때문에 훨씬 더 실질적이고 아주 속도감 있는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7일 2차 경제중대본 브리핑에서는 “정부의 비대면 서비스 확산은 의료 취약지나 의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원격모니터링이나 상담 조치를 확대하는 등의 내용에 국한된다”며 “원격의료 제도화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김 차관은 14일 3차 경제중대본 브리핑에서는 아예 ‘원격의료’라는 표현을 빼고 “최근 코로나 사태 계기로 한시 조치들이 비대면 의료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라며 “기재부도 비대면 의료 도입에 적극 검토가 필요하다는 기본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오고 있다”고 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24일 “솔직히 나도 그린 뉴딜과 비대면 의료가 한국판 뉴딜, 원격의료와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런 혼선은 코로나19 경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정부의 조급증과 여권의 지지층 눈치 보기가 겹친 데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한국판 뉴딜 추진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이끄는 경제중대본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앞서 지난달 20일 기재부는 포스트 코로나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내부에 ‘포스트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상태였다.

이 TF가 내놓을 종합대책과 경제중대본이 논의하는 한국판 뉴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달 들어 그린 뉴딜까지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 12일 환경부 등 4개 부처에 그린 뉴딜 대책을 주문한 것은 지지층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비대면 서비스 확대, 생활 SOC 구축 등 한국판 뉴딜 내용 중 일부를 두고 여권 지지층 사이에서 “기업 배만 불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원격의료 역시 여권 지지층에서 “코로나 정국을 틈타 정부가 슬그머니 의료 영리화의 길을 열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자 정부·여당에서는 원격의료란 명칭을 빼고 ‘비대면 의료’로 슬그머니 바꿔 부르고 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