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과 기존 산업이 충돌한 ‘타다 논란’이 부동산업계에서도 재연될 조짐이다. 한국감정평가사협회와 인공지능(AI) 기반 부동산 시세 제공 스타트업 ‘빅밸류’가 충돌했다. 업무 영역의 유사성 때문에 갈등이 예견됐던 상황이지만 뾰족한 교통정리 수단이 없어 당분간 다툼이 지속될 전망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민간 감정평가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지난 22일 빅밸류를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협회는 “빅밸류는 감정평가업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립·다세대 주택 등 부동산에 대한 시세를 평가함으로써 감정평가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정평가는 토지 등의 경제적 가치를 통화 단위로 표시하는 업무를 말한다. 재산권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 감정평가사가 아닌 사람이 감정평가를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빅밸류가 사용하는 AVM(자동가격산정) 프로그램이 사실상 감정평가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게 협회 지적이다.
실제로 빅밸류는 주택 주변 실거래 사례를 기반으로 전용면적, 층수, 건축연한, 주차대수 등 다양한 변수를 분석해 담보가치를 평가해 금융권에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빅밸류는 이미 공개된 빅데이터를 통해 시세를 추정하는 것이니만큼 감정평가업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금융위원회는 당시 빅밸류를 금융혁신 서비스로 지정하고 규제 샌드박스에 적용했다. 협회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으나 지정이 강행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국토교통부로부터 빅밸류가 감정평가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받았고, 빅밸류 서비스 내용과 국토부 회신 내용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회 상급기관인 국토부는 판단 기준만 제공했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렇게 단정적으로 (감정평가업 해당 여부를) 얘기한 것은 아니고 법률해석을 해줬던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빅밸류 사업모델이 이미 공개된 자료의 통계 분석을 통해 시세를 추정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감정평가가 아니지만, 특정 물건에 대하여 감정평가와 실질적 차이가 없는 방식으로 시세를 산출하는 경우에는 감정평가에 해당할 소지가 있으므로 금융위의 면밀한 검토를 요청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부연했다.
더 큰 문제는 빅밸류의 사업 영역이 연립·다세대 주택에서 아파트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빅밸류는 50가구 미만 아파트의 시세 제공을 시작했고 서울 및 수도권 단지형 아파트 시세 분석도 개발해놓은 상태다. 상업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검찰 고발로까지 갈등이 이어졌지만, 신산업 분야에 대한 이해 부족 탓에 관련 기관들이 선뜻 개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4자(국토부·금융위·빅밸류·협회) 간에는 지난해 6월 이후 추가 논의가 전혀 없었다. 국토부 측은 “필요하다면 협회든 빅밸류 측이든 만나서 기업 기밀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논의의 장을 마련해보는 안을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