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코로나 백신 띄우기 ‘투기·음모’ 주의보

입력 2020-05-25 04:03

코로나19 치료 기대로 주목을 끈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에 이어 미국 바이오업체 모더나의 백신 후보물질이 전 세계 주식시장에 구제주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 효과가 확실히 입증도 안된 상태에서 지나친 기대를 불어넣고 있어 그 이면에 투기와 음모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뉴욕타임스(NYT)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간) 모더나가 백신 후보물질의 임상1상에서 참가자 45명 전원에게 항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하자 S&P500지수가 3.1% 상승하는 등 주식시장이 급반등했다. 국내 코스피지수도 지난 19일 2.2% 상승으로 화답했다.

그런데 모더나는 불과 9시간 만에 예정에 없던 12억4600만 달러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1상 발표가 투자를 끌어들이려는 의도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1상 내용도 동료 평가(peer review·구성원 간 서로 하는 평가)를 거치지도 않았으며 백신 유효성을 판단할 만한 데이터를 내놓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 회사 이사로 활동하던 몬세프 슬라위 박사가 1개월 전 백악관에서 백신 개발을 총괄하는 자리로 이동하고 다른 임원들은 1상 발표 후 스톡옵션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 길리어드사의 에볼라 치료제 렘데시비르 역시 미국과 중국에서 이달 초 임상 실험 중간 과정이 일부 언론에 미리 보도되면서 비슷한 논란을 낳았다. 지난 1일에는 미 식품의약국(FDA)이 중증환자에게 긴급사용을 승인하겠다고 발표, 뉴욕증시를 끌어올렸다.

보건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 상용화에 아무리 빨라도 12개월 이상 걸리는 데다 안전성과 유효성 입증이 관건이라 주장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과학자들은 코로나19의 실체를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 백신 개발이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경제주체들의 경기회복에 대한 바람과 백신 조기 개발 성과를 이용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재선 의욕이 바이오 업체들의 조기 발표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언론들도 주요 의료학술지 발표 이전에 설익은 자료를 미리 입수하는 등 보도경쟁까지 가세하고 있다. 의학연구 자료 관련 미국 정부 사이트인 ‘클리니컬트라이얼’에 따르면 23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1673건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백신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엘도라도에 대한 환상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말까지 백신을 상용화하겠다는 내용의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발표한 것도 모더나의 1상 성과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임상 1상부터 3상까지 백신의 성공 확률은 6%에 불과해 모더나 백신은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더욱이 코로나19는 통상 바이러스에 나타나는 돌연변이도 확인되지 않았다.

보건전문가들은 코로나19 해결이 국제공조가 절실한 인류의 공통 과제임에도 미국과 중국이 개발 경쟁을 지정학적 대결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점도 우려한다. 두 나라는 유럽연합(EC) 주도의 백신 개발 모금 회의에 불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신 개발 유력업체인 독일의 큐어박 구매를 타진하는 등 백신의 자국민 독점 공급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인민해방군까지 개발에 개입할 정도로 백신 성공을 미국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하는 용도로 취급하려는 분위기라고 FT는 지적했다. 중국 바이오업체 지노박은 오는 7월 임상 2상을 마친 뒤 상용화할 계획까지 세우는 등 백신 개발 작업이 초스피드로 진행되고 있다.


2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86개 국가들의 시총은 76조3912억 달러(약 9경4595조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최저치를 보였던 3월24일의 61조5849억 달러(7경6266조원)에 비해 24.04% 증가한 것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둔화되고 빈번한 백신 랠리 덕분이다.

러시아(35.9%) 미국(33.5%) 독일(28.7%) 영국(27.9%) 등이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국은 27.7%로 전체 중 23위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조민아 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