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로 얼굴 가림막 만든 건 말씀 실천”

입력 2020-05-25 00:05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과대 김경만 교수는 지난달부터 3D 프린터로 얼굴가림막을 만들어 코로나19 최전선에 있는 에티오피아와 지부티, 마다가스카르 의료종사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사랑밭 제공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있는 지부티대사관이 지난달 28일 본국에 외교행낭을 보냈다. 외교행낭은 파견국 정부와 재외 공간 사이에 서류나 물품 등을 수송하는 데 쓰는 가방이나 서류 봉투다.

행낭 속에는 얼굴가림막이 들어있었고 이는 지난 6일 지부티 알리사비에주 국립병원에 전달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노출된 의료진에게 얼굴가림막은 최소한의 방역수단이다. 지부티대사관은 코로나19로 국경 이동이 어려워지자 얼굴가림막을 보내기 위해 외교행낭을 동원했다.


이 얼굴가림막을 만든 사람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공과대학의 김경만(60·사진)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다. 그가 만든 가림막은 지난 21일 에티오피아 딜라 지역 의료진에게도 전달됐다. 지난달 초엔 마다가스카르에도 보냈다.

김 교수는 24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처럼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남미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새로운 진원지가 됐다는 세계보건기구 발표가 있었다”며 “남미의 선교사나 단체에서 요청하면 가림막 제작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독일에서 물리학박사 학위를 받고 할레-비텐베르크의 마르틴루터대학교와 스페인 나바라주 나바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독일 라이프치히 ‘프라운호퍼 세포치료 및 면역학 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도 있었다. 공학자로 후학을 양성하던 그는 2015년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그는 “감사하게도 학자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면서 “선교사는 아니지만, 누군가를 돕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아디스아바바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지역 교회에 자비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 줬다. 그는 “에티오피아는 수도인 아디스아바바만 벗어나도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다”며 “휴대전화를 충전하려고 읍내까지 가야 하는 곳이 적지 않은데 교회에 전기가 있으면 그들이 교회에 올 것으로 생각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방역과 치료를 도울 수 있는 일을 모색했다. 김 교수는 “의료인은 바이러스에 감염될 위험이 높아 개인보호 장비가 많이 필요한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제작 기술도, 구입할 돈도 없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아디스아바바 치과대학병원 의사가 얼굴가림막을 쓰고 진료하는 모습. 사랑밭 제공

수제로 만들 수 있는 마스크보다 만들기 까다로운 얼굴가림막이 떠올랐다. 학생 교육을 위해 지난해 사비로 구입한 3D 프린터도 있었다. 최소한의 물자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아프리카 맞춤형 모델을 만드는 게 과제였다. 여러차례 실패를 거쳐 완성품이 나왔다. 이마에 부착하는 밴드형 프레임을 3D 프린터로 만들어 OHP 필름을 붙이는 방식이다. 플라스틱 사용량은 최소한으로 줄였고 프레임 하나를 출력하는 데 2시간이면 됐다.

김 교수는 “제작 비용이 1달러 미만인 데다 어떤 3D 프린터로든 만들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OHP 필름만 교체하면 프레임도 재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고 프린터가 한 대라 하루 10개밖에 못 만드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한국의 NGO 월드쉐어와 사랑밭은 재료 공급과 얼굴가림막의 현지 지원 과정에 도움을 줬다. 마다가스카르와 지부티의 한인 선교사들은 지역 의료시설에 김 교수가 만든 얼굴가림막을 전달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에 기도도 요청했다. “주어진 여건에서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려 합니다. 물질이 아니더라도 한국교회가 저희의 실천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