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어질하다.” “(내가 혹은 주위가)빙글빙글 도는 것 같다.” “중심을 못잡고 술취한 것처럼 비틀거린다.”
어지럼증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어지럼증 진료 환자는 지난해 200만명을 넘어섰다. 단순히 스트레스나 피로감 때문으로 생각해 간과하기 쉽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고 방치할 경우 만성화되거나 심각한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어지럼증을 일으키는 원인 질환이 매우 다양한 탓에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가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인의 나이, 성별 등 인구학적 특성에 따라 어지럼증의 원인 질환들을 밝혀낸 국내 최초의 연구가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지수 교수팀은 2003~2019년 어지럼증 진단자 2만1166명을 분석한 결과를 최근 국제 신경학저널에 발표했다.
어지럼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이석증(耳石症)’이었다. 정식 의학용어로 ‘양성돌발체위현훈’인 이 질환은 24.2%를 차지했다. 이어 심리 어지럼(20.8%), 뇌졸중 등 뇌혈관질환에 의한 어지럼(12.9%), 편두통성 어지럼(10.2%), 메니에르병(7.2%), 전정 신경염(5.4%) 등 순이었다.
연령별로 겪는 어지럼증에 차이가 있었다. 19세 미만 소아 청소년은 편두통성 어지럼(35%)이 가장 많았다. 19~64세는 심리 어지럼(26.3%)이 가장 흔했다. 65세 이상 노년층에서는 이석증(28.2%)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어지럼증을 배 가량 많이 겪었다. 편두통성 어지럼의 경우 무려 81%의 환자가 여성이었다.
이석증은 속귀(내이)의 일부인 전정기관(머리 움직임과 기울어짐을 감지해 인체 평형을 잡는 기능)에 모여있는 이석(탈산칼슘 결정체)이 노화나 외부 충격으로 떨어져 나와 머리 회전을 감지하는 3개의 반고리관으로 들어가 생긴다. 머리 움직임에 따라 도는 양상의 어지럼증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나이 들수록 자주 일어난다. 김 교수는 25일 “대부분 아침 잠자리에서 뒤척일 때 ‘심하게 돈다’고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반고리관에 들어간 이석을 원래 위치로 복원시키기 위해 머리를 특정 방향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대부분 치료된다.
메니에르병도 내이의 문제다. 속귀를 순환하는 림프액이 과다 생성돼 전정기관과 달팽이관(소리 감지)이 점점 부풀어올라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예민한 사람들에게 잘 나타난다. 어지럼증과 함께 귀 안에서 소리가 나고 갑자기 잘 안 들리거나 귀에 물이 차는 듯한 먹먹한 느낌이 동반될 경우 의심해야 한다.
전정 신경염은 전정기관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에 염증이 생겨 어지럼증을 느끼는 병이다. 빙빙 도는 어지럼증과 메스꺼움, 구토 등이 생긴다. 발병 전에 감기를 앓은 경우가 흔히 있고 과도한 스트레스나 무리한 일로 몸이 피곤할 때 발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심리 어지럼은 공황장애나 광장공포증 같은 불안장애,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정신과 질환과 관련된 증상이 어지럼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지럼증은 ‘미니 뇌졸중’의 사전 신호일 수도 있다. 특히 소뇌와 뇌간으로 가는 혈관의 피 흐름에 문제가 생길 경우 뇌졸중이 작게 발생하는데, 이때 어지럼증과 자세 불안이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김 교수는 “경미한 어지럼증과 함께 균형감을 잃는 듯한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뇌영상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편두통은 뇌 주변 혈관 및 신경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두통의 일종이다. 절반 정도의 환자에서 어지럼증이나 멀미 증상이 동반돼 구역질·구토가 유발한다. 편두통성 어지럼을 느끼는 이들은 우선 편두통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는 요인들인 특정 식품이나 알코올, 커피, 향료 등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