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가계살림이 평균 141만원 ‘흑자’가 났다. 그러나 실속 있는 흑자는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소득보다 지출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다. 오히려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근로소득이, 고소득층은 사업소득이 줄었다. 상·하위 소득 격차는 5.41배로 1년 새 더 벌어졌다.
통계청은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구당 월평균 소득이 535만8000원이라고 21일 밝혔다. 전년 대비 3.7% 증가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가계지출은 월평균 394만5000원에 불과했다. 1년 새 4.9% 급감했다.
코로나19로 각 가구는 지갑을 굳게 닫았다. -4.9%는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의류·신발(-28.0%), 오락·문화(-25.6%), 교육(-26.3%) 등에서 줄줄이 감소했다. 평균 소비성향도 67.1%로 7.9% 포인트 하락했다. 소득 대비 지출이 줄자 가계살림은 흑자가 났다. 평균 월 141만3000원으로 전년 대비 38.4% 급증했다.
소득은 3.7% 증가했지만 질(質)이 좋지 않았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 정부가 주는 돈이 가까스로 감소분을 막았다. 민간에서 번 돈은 많지 않았다는 얘기다. 저소득층과 중산층(1~3분위) 근로소득은 모두 전년 대비 동반 감소했다. 중산층 이상(4~5분위)은 사업소득이 하락했다. 코로나19로 자영업 부진이 심해지면서 중산층 이상 사업주들이 저소득층(1~2분위)으로 추락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분위 근로자 외 비중은 지난해 67.9%에서 올해 68.7%로 올라섰다.
특히 극빈층인 1분위는 소득 증가율이 ‘0%’였다. 국가에서 지원받은 공적이전소득이 10.3% 증가했지만 근로소득(-3.3%), 재산소득(-52.9%) 등이 줄었다. 반면 고소득층인 5분위는 취업자 증가, 고액 국민연금 수급 등으로 근로소득(2.6%) 등이 증가하면서 전체 소득이 6.3% 늘었다.
실업대란으로 퇴직금이 증가한 것도 역설적으로 소득을 늘렸다. 퇴직수당, 실비보험, 경조소득 등을 말하는 비경상소득은 전년 대비 79.8% 크게 증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실직자가 많아지면서 퇴직수당 등이 늘어난 영향은 있다”고 말했다.
분배는 악화됐다. 소득 상·하위 격차(하위 20%와 상위 20%)는 5.41배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5.18배)에 비해 더 커졌다.
상황은 더 나빠질 전망이다. 코로나19는 지난 3월부터 본격 확산됐으며, 고용 타격은 서비스업에서 제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일자리를 잃고 자영업자들이 폐업하면 가계소득은 더 쪼그라들 수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녹실회의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분배 악화가 2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다”며 “위기 과정을 겪으며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전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