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 피해 정신적 고통, 성추행보다 더 커… “처벌 강화를”

입력 2020-05-22 04:02

불법촬영 성범죄 피해자는 폭행·협박을 동반한 성추행 범죄 피해자보다 정신적 피해가 더 큰 것으로 파악됐다.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는 불법촬영물 등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한 데 이어 수사기관에 수사전담조직을 연내 구성할 계획이다.

여성가족부는 만 19~64세 이하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성폭력방지법에 따라 2007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데, 올해부터는 조사대상을 7200명에서 1만명으로 확대했다. 특히 이번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 실태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 ‘불법촬영’과 ‘불법촬영물의 유포로 인한 피해’를 분리해 조사가 이뤄졌다. 최근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성착취물이 유포된 ‘n번방’ 사태로 디지털 성범죄가 이슈화된 데 따른 것이다.

불법촬영 범죄 첫 피해 연령은 19세 이상 35세 미만이 64.6%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19세 미만도 13.4%나 됐다. 가해자 대부분은 전혀 모르는 사람(74.9%)이었다. 불법촬영 범죄 피해 발생 장소는 야외, 거리, 등산로, 산책로, 대중교통 시설 등이 65.0%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구 밀집 상업지(24.2%), 주택가나 그 인접한 도로(7.5%) 순이었다.

불법촬영물은 피해자 동의 없이 유포된 경우가 절반(49.0%)에 달했다. 유포 경로는 카카오톡 등 즉각 쪽지창(55.2%), 트위터·인스타그램 등 SNS(38.5%), 블로그(33.1%) 순이었다.

불법촬영으로 여성 피해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은 성추행 피해보다 심했다. 성폭력 피해자 중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 경우는 강간(86.8%), 강간미수(71.5%), 불법촬영(60.6%), 폭행과 협박을 수반한 성추행(58.1%), 성희롱(47.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이 느끼는 우리 사회의 성폭력 발생 위험 정도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1년 전 대비 성폭력 발생 위험 정도’를 7점 척도로 조사한 결과 위험 정도는 4.7점으로 나타났다. 4점(그대로다)을 기준으로 1점에 가까워질수록 감소를, 7점에 가까울수록 증가를 의미한다. 성폭력 발생 위험이 증가했다는 응답자는 그 이유를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이 약해서’(56.5%)라고 답했다. 위험이 감소했다고 응답한 이들은 그 이유로 ‘미투 운동 등 사회 전반의 경각심, 성의식의 변화’(41.1%)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성폭력 방지를 위해 시급한 정책으로 ‘가해자 처벌 강화’와 ‘신속한 수사와 가해자 검거’를 1, 2위로 꼽았다. 여가부는 ‘제1차 여성폭력방지정책 기본계획(2020~2024)’에 따라 올해 전국 지방검찰청 및 대규모 지청에 ‘신종 디지털 성범죄 사건 전담 수사팀’을, 경찰에는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설치·운영하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