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한화생명 캠프원에서 만난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 선수단 한화생명e스포츠의 손대영 감독(37)은 지난달 25일 마무리 된 ‘2020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을 복기하며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중국 리그에서 활약한 손 감독은 지난해 말 한화생명에 새 둥지를 텄다. 코치진 개편과 더불어 ‘리헨즈’ 손시우(21) 등의 선수를 영입하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고, 한화생명은 올해 초 울산에서 열린 ‘KeSPA컵’에서 색깔 있는 경기력으로 기대를 모았다. 신선한 챔피언 활용과 국내 리그에서 보기 드문 속도전을 펼친 한화생명에게 거는 팬들의 기대가 컸지만, 본 무대에선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10개 팀 중 최종 8위로 시즌을 마쳤다.
손 감독은 성적보다도 경기 내용에 짙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간 LCK에서 보지 못한 재밌는 팀을 만들어 보겠다”던 손 감독의 공언과 달리 한화생명은 시즌 중후반 들어 색깔이 모호해졌다. 손 감독은 “기대에 못 미쳤던 것 같다. 초반에는 우리가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즐거운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경기에서 조금씩 패하기 시작하면서 선수들이 자신감을 잃게 돼 플레이가 조심스러워졌다. 기존에 그렸던 그림이 많이 뭉개졌다”고 지난 시즌을 돌아봤다.
하지만 다시 나아가야 한다. 손 감독의 계획은 2년짜리다. 외부 영입과 육성군의 성장을 함께 도모해 한화생명을 다음 해 우승권에 근접한 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다. 한화생명은 최근 그리핀에서 뛰면서 LCK 준우승 3회,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8강까지 진출한 원거리 딜러 ‘바이퍼’ 박도현(19)을 영입했다. 아울러 육성군에서 뛰던 ‘두두’ 이동주(19)를 1군으로 끌어올렸다. 손 감독은 “팀을 처음 맡은 당시에는 1년 동안 코어를 만들어 놓고 2년째에 승부를 본다는 생각이었다. 박도현 선수가 오면서 손시우 선수와 함께 코어를 구축했다”며 “이동주 선수는 실수는 많지만 공격적이다. 육체적 능력이 좋아서 공격적인 챔피언을 잡아 줬을 때 빛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손 감독이 생각하는 강팀의 조건은 시스템이다. 1팀·2팀(육성군)의 유연한 교류가 이뤄지는 환경뿐만 아니라 코치들의 업무 세분화가 구조적으로 자리잡아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나는 기존에 약팀이라고 평가받는 팀은 틀이 잘 안 잡혀 있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이기기 위해선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코치들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거다. 이제 갖춰지는 단계다. 필요성으로 따지자면 더 세부적으로 업무를 나눠도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손 감독은 다가올 서머 시즌, 한층 성장한 한화생명을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롤드컵 진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손 감독은 “약팀이 강팀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다섯 명을 전부 슈퍼스타로 채우지 않는 이상 단번에 강팀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게 팀을 구성한들 건강한 팀이 유지되긴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한화생명이 약팀에서 중위권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번 서머에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팀을 만들겠다는 꿈도 손 감독은 포기할 생각이 없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응원할 맛이 나는 재밌는 팀을 만드는 것도 제 목표예요. 성적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보고 즐거우셨으면 하고 힘들 땐 함께 슬퍼하며 감정을 공유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스포츠의 가장 큰 매력 아닐까요.”
문대찬 쿠키뉴스 기자 mdc05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