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중국 때리기’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재선 전략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표면상으로는 코로나19로 촉발된 미·중 갈등이지만 이면을 보면 자국 내 반중 여론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국 공격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실행 가능한 재선 전략이 사라진 상황에서 ‘중국 혐오’는 트럼프 재선 캠프의 핵심 연료가 됐다”고 지난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간 미 대선 정국에서 외교문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코로나19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트럼프 캠프가 핵심 대선 전략으로 밀어붙이려던 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무너졌고, 성과로 내세우려던 팬데믹 대응도 미국 인명 피해가 극심해지면서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중국 책임론’은 두 가지 실패 모두에 변명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 진영으로선 매력적인 선택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좋게 말해 중국 중심적이고 중국의 꼭두각시”라며 WHO와 중국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자신이 WHO에 ‘중국으로부터 독립돼 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으면 자금 지원을 영구적으로 끊겠다’는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도 트위터틀 통해 공개했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들도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전날 홍콩 자치권 침해 문제를 거론하며 중국에 경고를 보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도 “WHO가 중국 압박에 따라 대만을 총회에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대만 배제를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연이은 성명에서는 “중국이 티베트 불교 서열 2위인 11대 판첸라마를 납치한 지 25년이 지났다”며 그의 행방을 밝히라고 압박했다. 중국 정부가 내정 문제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을 콕 집어 공격한 것이다.
전날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정책국장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주장한 뒤 “이번 대선은 많은 점에서 중국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의) 국민투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중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트럼프 진영으로선 호재다. 지난달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3명 중 2명은 중국에 부정적 입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캠프는 대선 경쟁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베이징 바이든’ 등의 슬로건으로 공격하고 있다. 민주당 후보인 그가 중국 친화정책에 동조해온 점, 부통령 시절 그의 아들이 소속된 회사가 중국 투자를 받은 점 등을 들어 친중 세력으로 낙인찍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간 ‘공격적 민족주의’를 국가통합 이념으로 제시하며 독재에 대한 내부 반발을 잠재워온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서도 미국의 대대적 공세는 집권 명분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중 집권세력이 서로를 공격하면서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가는 셈이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를 지냈던 커트 캠벨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양국 간 갈등을 ‘신냉전’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과 소련은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고, 소통창구도, 무역도, 여행도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특이한 냉전 관계였다”며 “하지만 미·중은 투자 및 제조업의 측면에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상호 연결된 관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샴쌍둥이를 분리 수술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