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이모(37)씨는 지난 12일 6시간 대기 끝에 샤넬백을 구매했다. 그는 ‘오픈런’(매장이 오픈하자마자 뛰어가 줄을 서는 것)에 동참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이씨는 “평소 제가 아이들 위주로 소비하는 걸 잘 아는 남편이 ‘평소 갖고 싶었던 걸 용돈 모아 사면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라’고 하더라”며 “더 비싸지기 전에 얼른 사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말했다.
‘샤넬 오픈런’이 최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14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최소 500만~600만원에 판매되는 샤넬백을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림을 마다치 않고 오픈런을 하는 2030세대를 보며 ‘사치스럽다’며 비판하는 의견이 적잖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치 소비’에 의미를 두는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를 통칭)의 특성이 나타난 소비 행태라고 분석했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식비나 의류, 잡화 등엔 가성비를 따지며 소비를 줄이고, 명품백처럼 가치를 두는 제품엔 아낌없이 투자하는 ‘자기 만족적 소비 행태’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나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소비)를 중시하는 것이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명확해졌다. 고인곤 강남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부터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경기가 나빠지면서 양극화된 소비행태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줄어든 예산을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사용하려다 보니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와 명품을 구매하는 ‘플렉스’(FLEX·많은 돈을 쓰면서 자랑한다는 뜻의 신조어)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MZ세대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명품 가운데서도 비교적 저렴한 상품군을 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말 발표한 ‘트렌드Y 리포트’에 따르면 20대의 명품 구매 건수는 2019년 3분기에 2017년 동기 대비 7.5배 급증했다. 20대는 반지갑(34.2%), 카드지갑(25.1%), 운동화(23.1%) 등을 주로 구매해 작은 명품을 사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20대 명품 구매자들은 명품을 구매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를 함께 착용했다. 의류와 잡화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온라인 쇼핑몰을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에이블리’ ‘지그재그’ 등의 애플리케이션(앱)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에이블리 앱 방문자가 역대 최고치인 130만명을 돌파하고,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1~2월에도 130만명 내외를 유지했다. 또 최근 여성 쇼핑몰 모음 서비스 지그재그가 국내 패션 앱 최초로 누적 다운로드 2000만회를 기록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의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명품 소비와 빠른 트렌드를 즐기는 일반 소비 양대 축을 중심으로 패션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