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모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허위 인턴 의혹’에 대한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재판이 기억력 공방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재판부는 명확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증인들의 10여년 전 기억에 기대어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검찰은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가 2009년 5월 15일 개최한 ‘동북아시아의 사형제도’ 국제학술세미나에 조씨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조씨가 센터에서 받은 인턴십 확인서도 허위라고 본다. 조씨와 함께 인턴십 확인서를 받은 동창 2명은 “조씨는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았다”며 검찰 입장을 뒷받침했다. 반면 당시 센터 사무국장이었던 김모씨는 “조씨는 세미나에 참석했다”며 정 교수 측에 유리한 증언을 했다.
법원의 확립된 판례는 “법관이 합리적 의심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유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정 교수 측이 재판부에 약간의 의심만 들게 해도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잘 모르겠다’고 생각할 정도만 돼도 피고인 측이 이기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때 대전제는 피고인 측 증인의 진술에 대한 신빙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재판에서 불확실한 부분과 기억나는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서 증언했다. 그는 조씨가 분명히 세미나에 참석했고 당일 뒤풀이에서 자기소개를 한 기억이 난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사건 당시에 대한 김씨의 진술에서는 일부 명백한 오류가 발견된다. 우선 김씨는 지난 14일 공판에서 “세미나에서 중국어가 사용된 적 있느냐”는 정 교수 측 변호인 질문에 “없었다”고 했다. 변호인은 조씨의 세미나 불참석을 주장하는 한영외고 동창 장모씨 기억의 신빙성을 깨기 위해 이같이 질문한 것으로 보인다. 앞선 공판에서 장씨는 “세미나 때 어떤 사람이 중국어를 유창하게 해서 기억이 남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당시 세미나 영상에는 강연자 중 한 명이었던 베이징대 법학원 교수가 장씨 진술대로 중국어로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오히려 변호인이 김씨 기억을 믿기 어렵게 만드는 신문을 펼친 셈이다.
세미나 당시 조씨의 머리 길이에 대한 증언도 김씨 진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김씨는 세미나 당시 조씨의 머리 길이에 대해 가슴 정도까지 오는 긴 머리였다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세미나 이틀 뒤 촬영된 한영외고 졸업사진 속 조씨는 단발이었다. 김씨가 세미나 영상에서 조씨로 특정한 인물도 착시효과 때문에 얼핏 긴 머리로 보였지만 장시간 관찰한 결과 단발로 확인됐다. 물론 조씨가 세미나 직후 머리카락을 잘랐을 가능성은 있다. 문제는 이 경우 김씨가 지목한 영상 속 단발 여성은 조씨가 아니게 된다.
세미나 강연자 중 한 명이었던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가 지난 14일 쓴 페이스북 글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백 교수는 “(세미나 당일) 조씨를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한영외고에 다닌다는 얘기도 듣고 기특하다고 칭찬해준 기억이 난다”고 썼다. 그는 과거 조 전 장관이 연루됐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공동위원장 출신이다.
백 교수의 발언은 검찰 공소사실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다만 법원 관계자는 “법정 밖 발언은 재판부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심증 형성을 위해선 증인신문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