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포항공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 전에 대전에 있는 KAIST에서 3년 반을 지냈습니다. 이때 공동체와 떨어져 혼자 하는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영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경험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제 신앙은 개인적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영혼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헌신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신앙도 잘 지키고 일도 열심히 해서 성과 잘 내고 좋은 직장을 얻자, 직장을 얻으면 떠나야지.’ 이것이 교회를 향한 저의 태도였습니다.
2016년 12월 크리스마스 예배 설교 말씀이 제 마음을 변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 제게 이렇게 묻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뭘 하다가 왔니.” 하나님은 명백한 목적이 있으셔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 곧 영혼을 섬기고 세움으로써 교회를 예수님의 몸답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마지막 날에 예수님 앞에서 할 수 있는 말은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살다가 왔습니다”라는 말 외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 부르심에 합당한 삶은 내가 원하는 것과 안목과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2018년 초 대학원을 졸업할 때가 됐습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에선 보통 3~5년 해외에서 더 연구한 뒤 한국에 들어와서 직장을 얻습니다. 대학원 실적도 나름 잘 쌓아놨기 때문에 선후배나 아는 교수님도 제가 당연히 이 과정을 밟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진로를 놓고 기도하는데,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과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면 제자리에 숨겨 두고 기뻐하며 집에 돌아가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마 13:44)
하나님께서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이 보이는지, 그 보물이 가치가 있다면 밭을 사기 위해 무엇을 팔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기도하는데 아내도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 인생을 걸어 보지 않겠냐”고 물었습니다. 말씀에 제 마음을 비춰보니 제 마음 안에 있는 두려움이 드러났습니다. 제 일은 연구하는 것인데, 안정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직장을 얻지 못하면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듭 물어보셨습니다.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 보물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는 하나님의 구원 은혜와 그 은혜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다.
결단하고 나니 하나님께서 이 말씀의 의미를 제게 새롭게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밭에 숨겨 놓은 보물을 사기 위해 뭔가를 포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 모든 소유를 팔아도 살 수 없는 보물을 사는 은혜를 입은 것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라는 보물이었습니다.
포항에 있기로 한 뒤 상황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진로를 놓고 교수님과 갈등도 겪었습니다. 외국의 좋은 연구기관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이 들어올 때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대구와 울산을 포함해 포항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에서 제 분야의 직장은 손꼽을 정도로 적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굳게 붙잡을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 참고 견디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인내할 힘을 주셨습니다. 내게 힘을 주시는 말씀은 바로 교회였습니다. 히브리서 말씀 속의 믿음의 선진들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저와 함께 있는 이 교회가, 목장이 저를 구름 떼와 같이 둘러싸고 있는 증인들이니 염려하지 말고 달려가라는 힘을 주셨습니다.
최근 아브라함의 믿음을 묵상하며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러 갈 때 이삭에게 한 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번제로 바칠 양이 어디에 있냐는 이삭의 질문에 아브라함은 “번제로 바칠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현재 포항공대 대학원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때 주께서 직접 가장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계속 이 길을 가려 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준비해 주시는 최선의 길을 믿으며 순종의 삶을 살겠습니다.
김지민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