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사내벤처 하나, 열 계열사 안 부럽다.’
국내 대기업들이 사내 창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 분사(스핀오프) 제도를 통해 기업은 주요 기술의 사업화 과정을 시작 단계부터 지켜볼 수 있고, 임직원은 회사라는 안정된 틀 안에서 아이디어의 구체화를 시도할 수 있어 ‘윈-윈’하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최근 코로나19 확산으로 불확실해지는 사업 환경에 맞서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사내 벤처가 갖는 가치도 주목받으면서 재계는 이들 육성에 적극적인 분위기다.
사내 벤처 육성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삼성전자는 2012년부터 ‘C랩 인사이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2015년부터는 스핀오프 제도를 도입해 초기 사업자금 제공은 물론, 분사 후 5년 내 재입사 기회를 제공해 실패에 대한 부담도 줄여줬다. 이를 통해 분사한 스타트업만 45개에 이르며 이들의 가치는 스핀오프 당시보다 3배 이상 뛰어올랐다. 스핀오프 이후 유치한 투자금도 550억원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는 18일 C랩 인사이드를 통해 5개 우수 과제 스타트업의 창업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독립하는 스타트업은 인공 햇빛을 생성하는 창문형 조명 ‘써니파이브’, 인공지능(AI) 기반 오답 관리와 추천 문제를 제공하는 ‘학스비’, 컴퓨터그래픽(CG) 영상 콘텐츠를 쉽게 제작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 등이다. 종이 위 글자를 디지털로 변환해주는 ‘하일러’와 자외선 노출량 측정이 가능한 초소형 센서 ‘루트센서’도 낙점됐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사내 스타트업 육성에 뛰어든 현대자동차그룹도 이날 사내 스타트업 4곳을 독립 기업으로 분사시켰다고 밝혔다. 친환경 소재인 버섯 균사로 차량 소재를 개발하는 ‘마이셀’과 3D 프린팅용 금속 분말을 공급하는 ‘피엠쏠’, 직장인 대상 정기 카풀 서비스 ‘원더무브’, 3D 도면 정보 솔루션 업체 ‘엘앰캐드’ 등이다. 이들 스타트업은 2∼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성공적으로 분사를 마쳤다.
현대차그룹은 2000년부터 사내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올해까지 총 16개사를 분사했다.
SK그룹도 적극적이다. SK하이닉스는 2018년부터 ‘하이게러지(HiGarage)’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구성원의 우수한 아이디어에 창업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차고(garage)에서 창업한 것에서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1기 프로그램을 통해 4개 사내 벤처가 법인을 설립했고, 지난달 6개팀이 2기로 출범해 창업 준비에 한창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부터 ‘스타트앳’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들이 직접 아이디어에 투자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로 발전시킬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LG CNS, LG 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LG그룹 계열사들도 전담 조직을 만들어 지원에 나서면서 총 7개 스타트업 분사에 성공했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변화가 점점 빨라지는 가운데 사내 벤처 육성을 통해 기업은 신사업을 발굴할 수 있고, 임직원은 창업 실패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며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기업 문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도 제도의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김성훈 박구인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