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12) 쏟아지는 눈물 참으며 아이들 밥 차려 놓고 집 나와

입력 2020-05-20 00:06
김연수 사모가 도피차 찾아간 강원도 태백 예수원의 전경. 김 사모는 약속도 없이 온 자신을 예수원 식구들이 따뜻하게 맞아 줬다고 회상했다. 국민일보DB

몇 번인가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입다 벗어 놓은 옷가지며 이불 홑청을 다 뜯어서 빨았다. 내가 살던 자리는 내가 정리해 놓고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탁기가 없어 빨래를 큰 그릇에 담고 세제를 풀어 박박 빨아댔다. 부풀어 오르는 거품이 내 분노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빨래가 다 끝날 무렵이면 집을 나가겠단 결심도 물에 씻긴 듯 사라졌다.

빨래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는 날도 있었다. 이날은 특히 심했다. 자정 넘어 가까스로 붙였던 눈을 떼고 부스스 일어났다. 동이 트기 전이었다. 가방에 갈아입을 옷 두 벌을 넣고 세면도구와 성경, 찬송가를 챙겼다. 남편은 지난밤의 다툼은 잊었는지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자는 아이들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맘을 독하게 먹어야 한다.’

현관문을 열고 나오다가 문득 아이들 밥이라도 해놓고 가자는 생각에 다시 들어왔다. 조용히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아침상을 차려놓고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태백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예수원’이었다.

저녁이 다 돼서야 예수원에 도착했다. 나는 뜬눈으로 하룻밤을 지냈다. 이튿날 아침 예수원 사람들에게 금식한다고 말하고는 홀로 계곡을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 봤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슬픔이 한꺼번에 폭발했는지 자꾸만 눈물이 났다. 큰 소리로 울고 또 울었다. 그렇게 사흘을 보냈다. 밤에는 예수원에서 지내고 아침 일찍부터 사방이 어두워질 때까지 산골짜기 나무 그늘에 앉아 울다가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도 지치면 멍하니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나흘째 되던 날부터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멍하니 흐르는 계곡물만 바라봤다. ‘물은 시시각각 부닥뜨리는 수많은 장애물을 말없이 스치며 어쩌면 저렇게 잘도 흘러가는 걸까. 그런데 난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내 삶에 박혀 있는 몇 개의 장애물을 극복하지 못하고 왜 여기 와 있는 걸까.’

생명은 어쩌면 번민의 작은 알갱이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나는 울음 대신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는 대로 다 불렀다. 그러는 사이 내 속에 웅크리고 있던 오랜 번민이 계곡의 물줄기를 타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나를 조금씩 자유롭게 했다. 며칠 굶었는데도 힘이 솟았다.

나는 고뇌의 저편에서 돌아와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위로가 몰려왔다. ‘그들은 모든 변화를 이끌어내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다. 그분 안에 있다는 건 긍정적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니 무얼 두려워하랴.’

순간 시어머니와 남편이 받았을 상처와 아픔이 내게 오롯이 전달됐다. 내가 힘든 것처럼 저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아픔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나는 또 울었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아픔에 눈먼 장님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울었고, 그분들을 더욱 사랑하지 못한 후회함과 아픔 때문에 울었다.

‘사랑하다 얻은 상처는 더욱 사랑할 때만 치유되니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 말하자.’ 다음 날 나는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었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