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소가 사라져간다. 작은 도마부터 문짝과 대들보까지 ‘집’을 구성하는 대부분이 만들어지던 곳. 가구공장과 인테리어업체가 역할을 대신하면서 보기 힘든 장소가 됐다. ‘문짝거리’로 불리던 서울 서대문구 홍은사거리에도 남은 목공소는 둘뿐이다.
유진목공소는 아직 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 목수 부자(父子)가 창호를 만든다. 까칠한 나무도 이들의 대패질 몇 번이면 반들반들한 속을 보이고 만다. 손질한 나무살을 맞추고 못질을 하면 아름다운 문양의 문과 창이 탄생한다. 수제 창호는 한옥 열풍을 타고 적잖이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 솜씨가 좋아 단골도 제법 많다. 지난해 한·미 정상 만찬 장소였던 청와대 상춘재의 문창살 99짝 교체작업도 이들이 했다.
아버지 윤대오(69) 사장은 열네 살부터 56년간 목수로 살았다. 그는 “기술 배운다고 하루 17시간씩 나무와 씨름했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더라. 시간이 흐르자 기술도 농익었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들이 나를 대신할 때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들 윤종현(38) 목수는 아버지와 11년째 함께 일하고 있다. 목수의 삶에서 찾은 의미를 “나무로 만든 것은 따스한 느낌을 준다. 낡아도 잔정이 간다”는 말로 설명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은 철과 시멘트로 뒤덮였다. 도시가 차가워졌다. 목공소가 남아 있는 골목은 그래서 아직 온기가 느껴진다.
사진·글=김지훈 기자 d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