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도 함께 기도하고 힘을 합해 끝내 이겨내리라 확신한다. 10년, 20년 뒤에는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하게 해 주셨다. 이는 분명 소중한 영적 자산이다. 주님께선 한국교회를 ‘V’자로 복원하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 영광으로 위기 통과를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먼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우리 안에 체화시켜야 한다. 고난과 영광의 양면성을 깊이 체험할 때 우리의 신앙은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뛰어오른다.
바울에게 십자가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도, 더 근본적인 것도 없었다. 그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는 대헌장을 반복해 선포했다.
나는 가난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4~5학년 무렵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미자립교회 목회자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있었던 일이다. ‘웬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가셨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찬송가를 부르는데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름방학 한 달 동안 흠뻑 주님의 은혜에 젖었던 기억이 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깨달은 진리는 단 한 가지였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셨다.’ 이 단순함 속에 진리가 살아 숨 쉬고 구원의 서정이 완성된다. 대표적인 무신론 철학자 니체도, 베스트셀러 ‘만들어진 신’의 작가 리처드 도킨스도 깨닫지 못한 십자가 신비를 깨달았다는 사실에 지금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세상이 볼 때 십자가는 수치와 부끄러움의 상징이다. 하지만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십자가가 곧 영광이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야 했다. 이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너무나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보편 지성, 보편 종교, 보편 윤리를 뛰어넘어 십자가를 자랑할 때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영광’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야 한다. 한국교회 성도 모두 삶의 수치, 고통과 좌절이 십자가라는 터널만 통과하면 영광으로 변화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 고난과 어려움을 십자가의 능력을 자랑하며 잘 통과해야 한다.
오바댜의 창조적 분리와 전투적 비폭력
코로나19 사태 초기, 교회와 성도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누구보다 방역 지침을 모범적으로 지키며 현장 예배를 복원하고 있다. 예배와 관련해 세상의 비난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선한 영향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넘어 ‘창조적 분리’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의 유혹과 위협에서 영적인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오바댜는 “왜 악랄한 왕후 이세벨 밑에서 일하냐”는 비난의 불화살에 노출된다. 그는 정의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비판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선지자 100명을 구해 냈다. 그는 “바알을 숭배하라.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다 죽여라”는 왕과 왕후의 명령에 비폭력으로 저항했다. 갈멜 지역 동굴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숨기고 매일 먹을 것을 공급했다. 대단히 전투적이면서도 철저하게 비폭력적으로 응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거짓말, 뇌물 향응, 비양심적 거래의 유혹 등 노골적인 불의에 오바댜처럼 전투적인 비폭력으로 맞서야 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준비된 한 사람 오바댜를 통해 역사를 써 내려 가신다. 지금도 다음세대를 책임질 21세기 오바댜를 찾고 계신다.
한국교회만큼 도덕성을 갖춘 공동체가 있는가.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한 문화 속에서 교회만큼 거룩하게 살고자 몸부림치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곳이 있는가.
교회만큼 사회적 어려움 속에 봉사하는 단체가 있었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구성원들이 한목소리로 매일 기도하는 공동체가 있었던가. 위축되지 말고 당당해지자.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자부심을 갖자. 한국교회가 오바댜의 거룩한 전투력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대한민국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연설’은 270여 단어밖에 안 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은 잘 알려졌지만 정말 중요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를 낳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아래’(under God) 있는 민족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사태와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고 간단하지도 않다. 힘겨운 싸움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있는 대한민국을 코로나바이러스가 어찌하지 못한다.
한국교회가 지금 겪는 이 환난, 그동안 당했던 수모와 도전들, 지난 삶의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어려움은 훗날 지나고 보면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갖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 은혜를 의지하며 다시 한번 창조주 하나님께 내 삶을, 이 민족을 의탁하자.
오정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