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전북 전주 전북대 민주광장. ‘이세종 열사’란 외침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이 열사는 1980년 신군부 계엄군 소속 공수부대가 광주에 진입하기 하루 전 전북대 교정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대학생들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과정에서 희생당했다. 이 열사는 5·18민주화운동의 최초 희생자로 기록돼 있다.
전북대 농학과 2학년이던 그는 학생회관에서 농성을 하다 건물 옥상에서 추락해 숨졌다. 공수부대가 교정에 진입하는데도 끝까지 동료 학생 40여명과 함께 계엄철폐를 외치다 쫓겨 옥상으로 올라갔다가 변을 당했다. 주검으로 발견된 이 열사의 온몸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피투성이가 된 채였다.
당시 검찰은 추락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주검을 검안했던 전북대병원 이동근 교수는 훗날 “두개골 골절과 간장파열 등은 추락이라는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동시에 발생할 수 없다”며 추락 전 공수부대원들에 의한 집단폭행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북 지역 민주화 인사들과 전북대 선후배들은 매년 묵묵히 이 열사를 기리고 5·18을 기념해 왔다. 학생들은 83년 경찰의 눈을 피해 학생회관 앞에서 첫 추모제를 지냈고 2년 뒤 교정에 추모비를 세웠다.
하지만 이 열사와 전북대 사태는 5·18 광주에 비해 거의 조명받지 못해 왔다. 수많은 시민이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당시의 광주가 워낙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열사는 고향인 김제에 묻혔다 98년에야 유공자로 인정돼 5·18민주묘지에 안장됐다. 대학 측은 95년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줬다.
이민규 순천향대 교수는 2002년 학술세미나에서 “5·18 최초의 무력 진압은 바로 전북대이고, 5·18 최초 희생자는 바로 이세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도 어김없이 추모식(사진)이 열렸다. 식장에서 만난 김남규(62) 전주시의원은 “5·18은 광주·전남만이 아니라 전북·전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민중항쟁이었다”며 “이 열사에 대한 재조명과 추모작업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40년 전 그날 밤 학생회관에 같이 있던 사이다.
행사는 ‘기억하라 오월정신! 꽃피어라 대동 세상’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사)5·18 민중항쟁 구속부상동지회 전북지부와 전북대 총학생회, 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13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이 열사 추모비 옆에 대형 영정을 세우고 국화꽃을 헌화했다. 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앞서 전북동부보훈지청은 14일 이곳에서 참배하고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전북대는 이 열사가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자리에 표지석 안내판을 이달 중 세우기로 했다. 전북도교육청은 온라인 교육을 통해 이 열사의 생애를 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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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글·사진 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