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우승을 지켜보면서 내색은 못했지만 힘들었어요. 꿈만 꿨던 우승을 마침내 이뤘습니다.”
박현경(20)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하고 세계 주요 프로골프 투어 가운데 가장 빠르게 개막한 제42회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달성했다. 박현경은 지난해 프로로 입문하고 8승을 합작한 ‘돌풍의 신인들’ 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하고 올해로 넘어온 무관의 프로 2년차였다. 그렇게 28전 29기로 이룬 프로 통산 첫 승은 2020시즌 KLPGA 투어 첫 번째 메이저 트로피인 동시에 세계 프로골프의 ‘포스트 코로나’에서 1호 챔피언 타이틀로 돌아왔다.
박현경은 17일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 컨트리클럽(파72·6601야드)에서 열린 KLPGA 챔피언십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6개를 몰아치고 보기를 1개로 막아 5언더파 67타를 적어냈다. 최종 합계 17언더파 271타. 이날 ‘챔피언 조’에서 함께 경기한 공동 2위 임희정(20)·배선우(26)를 1타 차이로 따돌리고 리더보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KLPGA 챔피언십은 출전자 150명, 총상금 30억원이 모여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그만큼 우승 상금도 컸다. 박현경은 우승 상금 2억2000만원을 손에 넣었다. 또 대상 포인트 70점을 획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올 시즌 2개 대회만을 개최한 KLPGA 투어에서 박현경은 단숨에 상금 랭킹과 대상 포인트 1위로 도약했다. 데뷔 시즌인 2019시즌 27개 대회와 올 시즌 개막전으로 지난해 12월 베트남 호치민에서 열렸던 효성 챔피언십까지 지금까지 프로 신분으로 출전한 28개 대회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설움을 모두 날려버렸다.
2000년생 동갑내기 임희정은 3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해 투어 통산 4승과 메이저 통산 2승에 도전했지만, 박현경의 뒷심에 휘말려 아쉬운 1타 차 공동 2위(16언더파 272타)에 머물렀다. 박현경과 임희정의 희비를 가른 곳은 13번 홀(파4)이다. 앞서 11번 홀(파5)부터 연속 버디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박현경은 버디 퍼트에 성공한 반면, 임희정은 보기를 쳤다. 박현경은 공동 선두까지 좁힌 임희정을 이 홀에서 2타 차이로 밀어내고 우승을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임희정이 15번 홀(파5)에서 버디를 잡고 1타 차로 다시 추격했지만, 박현경은 마지막 18번 홀(파4)에서 파 퍼트로 간격을 지켜 극적인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박현경은 경기를 마치고 13번 홀을 승부처로 꼽았다. 그는 “13번 홀에서 실수가 있었는데 공이 홀컵에 붙었다. 행운의 홀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현경은 우승을 확정한 그린 위에서 동료 선수들의 축하를 받을 때부터 시상식장을 거쳐 미디어하우스로 인터뷰를 하러 들어올 때까지 시종일관 눈시울을 붉혔다. 그만큼 인내의 시간이 길었다. 더욱이 KLPGA 챔피언십이 개막한 지난 14일은 박현경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박현경은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우승으로 바친 선물에 가장 큰 의미를 뒀다. 박현경은 “어머니에게 좋은 생일선물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회에 임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활동하는 세계 톱랭커들은 하나같이 부진했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골프의 도쿄올림픽 본선행 ‘커트라인’을 붙잡고 있는 랭킹 10위 이정은6(24)은 최종 합계 9언더파 공동 15위로 톱랭커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최종 라운드 생존자 가운데 가장 높은 랭킹 6위 김세영(27)은 이븐파 공동 46위로 완주했고, 랭킹 3위 박성현(27)은 2라운드에서 6오버파 공동 118위에 머물러 일찌감치 컷 탈락했다.
무관중 생중계로 치러진 이 대회에서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팬들의 시선을 모은 유현주(26)는 최종 라운드까지 생존한 경기력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유현주는 이날 최종 합계 1언더파 공동 51위로 완주한 뒤 “겉모습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프로 선수로서 기쁘고 감사하지만 나에게 외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양주=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